프로 현장에서 활약할 수 있는 국산 이어폰, 소니캐스트 Direm Pro S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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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현장에서 활약할 수 있는 국산 이어폰, 소니캐스트 Direm Pro SL

이무제 기자

지난 번에는 (주)소니캐스트에서 새로 개발한 4세대 SF 드라이버가 투입된 ‘디렘 디 어쿠스티션’을 현장 에서 테스트했다. 이번에 테스트할 장비는 같은 4세대 SF 드라이버를 장착한 ‘디렘 Pro’이다. 아무래도 프로 현장에서 쓰이는 이어폰은 분리형 커넥터, 그리고 오버이어 구조를 갖춘 쪽이 선호된다. 확실히 외형도 이쪽이 더 프로답기 때문에 현장에서 아무래도 더욱 반응이 좋을 것이라고 판단된다.

이미 한 번의 리뷰를 통해 그 성능을 증명한 4세대 SF 드라이버이다. 같은 드라이버를 장착한 디렘 Pro가 뮤지션이나 엔지니어가 아닌, 독자적인 튜닝 커브를 통해 어떤 색깔을 내보일지가 무척 궁금했다. 지난 호에도 한 이야기지만 디렘 Pro는 SL과 DL의 두 가지 버전으로 생산된다. 이번에 테스트한 제품은 디렘 Pro SL 버전이며, 스피커 청취자들에게 좀 더 익숙한 풍성한 저음을 제공한다. ‘SL과 DL 중 무엇이 정확한가?’에 대한 질문의 답은 이어지는 글에서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하겠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의미가 없다’가 정확한 답이 될 것이다. 어쨋든 저음의 양이 좀 더 풍성하기 때문에 듣는 즐거움쪽은 확실히 이 쪽이 좋다. 지난 번에 다룬 디렘 디 어쿠스티션과 비교했을 때, 디렘 Pro SL은 전반적으로 유사한 성향을 보인다. 하지만 넓은 대역폭과 풍성한 저음 면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분명 다르게 튜닝되어 있기 때문에 적잖은 차이가 난다. 이번 테스트에서는 이 차이를 짚어보려고 한다.


DL타겟? SL타겟?

먼저 SL은 소니캐스트가 독자적으로 구축한 SL 타겟 커브를 지칭하는 것이며, 이는 오랫동안 Harman 타겟에만 치중해왔던 소니캐스트로는 중대한 변화였다. 새로운 타겟 커브를 획득하기 위해 소니캐스트는 자체적으로 네이버 카페를 개설하고 이어폰 애호가들을 모아 대중적으로 선호되는 타겟을 서서히 만들어나갔다. 이를 통해 Harman 타겟에서 단점으로 지적되었던 저음의 질감과 고음의 거친 느낌을 현저히 개선하고 전 영역을 풍부하게 표현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의 타겟을 탄생시킨 것. SL 타겟은 전반적으로 스피커 청취 환경과 최대한 비슷한 느낌을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기에 상당한 저음이 있는 편이다.

DL 타겟은 좀 다르다. Diffuse Sound Field 음장을 충실히 적용하는 것이 이 커브의 목표다. 이는 인체의 머리와 귀, 그리고 상체를 본뜬 측정 장비를 통해 구현된 실제 스피커를 청취했을 때 적용되는 왜곡을 역으로 보정하여 이어폰을 튜닝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이를 충실히 따른 이어폰이 바로 그 유명한 에티모틱 리서치의 ER4 시리즈이다. 헤드폰에서는 Sennheiser HD600이 이런 계열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커브는 실제 공간이 주는 저음과 고음의 증폭을 고려하지 않은 면이 있기에 스피커 청취 환경에 익숙한 유저라면 저음과 고음이 다소 부족하고 중음이 지나치게 명료하다고 느끼는 경향이 있다. 다만 이어폰 청취에 처음부터 익숙한 유저들에게는 이 커브가 무척 자연스럽고 익숙하게 들린다고 한다.

어쨌든 어떤 커브에도 정답은 없기 때문에 소니캐스트측은 유저들의 요구를 모두 만족시키기 위해 제품을 두 가지 버전으로 내놓은 것이다. 이는 디렘 Pro가 일일히 수공으로 만들어지는 소량 생산 방식을 채택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청음해봤을 때는 SL은 풍성한 레퍼런스 헤드폰과 비슷한 느낌을, 그리고 DL은 상대적으로 과장없이 꼼꼼하게 전 대역을 전달하는 색다른 느낌을 전달했다. 두 제품의 패키지나 외형은 완전히 같으며 제품 본체에 각인된 글자를 통해서만 어떤 버전인지 알 수 있다. 이렇게 길게 설명했지만 사실상 가장 큰 차이는 역시 ‘저음의 양’이기 때문에 디렘 Pro를 구매할 사용자라면 저음이라는 단 한 가지 기준으로 제품 을 선택하면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프로페셔널다운 패키지

디렘 Pro의 정가는 16만 9천원이다. 그러니 10만원대 중반의 유명 브랜드 제품들과 경쟁하게 된다는 것을 뜻하는데, 이 제품군들을 돌아보면 대부분 엔트리급으로 분류되며 실제로 패키지도 엔트리급답게 구성된다. 지금까지 가격 거품을 극한까지 제거하기 위해 노력해온 소니캐스트의 기준으로는 기존 제품들보다 4~5배는 비싼 가격대이지만 말이다. 그만큼 가격에 대한 기준이 다르기에 디렘 Pro는 본격적인 레퍼런스급으로 분류되며 패키징 역시 그에 걸맞게 구성되었다. 제품 포장 박스를 열었을 때 가장 눈에 띄는 구성품은 매우 고급스럽게 생긴 인조가죽 파우치이다. 프로 현장에서의 사용을 대비한 연장 케이블까지 따로 챙긴다고 해도 모두 수납이 가능할 정도이지만 전혀 거추장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MMCX라고 쓰여져 있는 작고 검은 박스에는 말 그대로 MMCX 호환 케이블이 얌전히 수납되어 있다. 엄청난 고급품까지는 아니지만 음질을 해치는 수준은 아니며 일반적인 용도에서 역할을 충분히 해낼 정도의 퀄리티를 내주고 있다. 그 외에도 추가 이어가이드와 시장에서 호평받은 Orza 이어팁이 동봉된다.

패키지에 있어서 아쉬운 점이라면 프로 현장에서 꼭 필요한 연장 케이블과 1/4인치 TRS 변환젠더가 기본 동봉되지는 않는다는 점, 그리고 스폰지에 차곡차곡 박힌 구성품들을 빼내기가 상당히 어렵다는 점이다. 물론 제품 본연의 성능과는 전혀 상관없는 부분이지만 완전 국산 레퍼런스 이어폰이라는 상징성을 고려한다면 사소한 점까지 신경써주었으면 더욱 좋았을 것 같다. 하지만 아직 실망하기엔 이르다. 바로 모든 제품에 시리얼 넘버가 매겨짐과 동시에 전문 측정 장비를 이용한 실측치가 동봉된다는 점이다. 측정시트는 단 한장이지만 생산 과정에서는 드라이버를 선별하기 위한 측정이 이뤄지며 이 과정에서 매치드 페어 작업까지 수행된다. 이로 인해 사용자는 전 세계에서 가장 균일한 좌우 밸런스를 갖춘 이어폰을 소유하게 된다. 그리고 사용자가 갖게 되는 측정시트는 최종 검수 단계에서 측정되는 것이다. 완벽한 매치드 페어 작업과 더불어 모든 제품에 대한 측정치까지 동봉되는 이어폰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는 10배 이상의 가격을 지불해야 하며, 가장 저렴한 중국산 브랜드조차도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품은 40만원 이상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당연히 전수검사 및 전수측정을 거치기 때문에 QC 문제에서는 완전히 자유롭다. 만약 문제가 생긴다면 그것은 생산단계 이후 포장이나 배송과정에서 생기는 것으로 간주해도 좋다. 전량 한국 공장에서 수제로 제작되는데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거치기 때문에 하루 생산량은 50~100세트 정도로 제한된다. 이런 이어폰을 10만원대 중반으로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특권이 아닐까? 


헤드폰을 대체할 수 있는 고성능

사실, 이 제품이 무대 위 인이어 모니터로 각광받을 확률은 그다지 높지는 않다. 왜냐하면 무대 위 퍼포먼서가 사용하는 인이어 제품들은 저음과 중음, 그러니까 드럼과 보컬 사운드 위주로 왜곡되어 튜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으로서의 프로페셔널 ‘장비’라면 디렘 Pro는 맞지 않는다. 다만, 무대 위에서도 광대역의 정확하고 자연스러운 모니터링을 원하는 섬세한 뮤지션이라면 디렘 Pro는 매우 우수한 성능을 내 줄 것이다. 차음성이 워낙 훌륭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디렘 Pro가 프로페셔널 오디오에서 활약할 분야는 단연 헤드폰이 사용되던 곳이다. 말하자면 라이브 현장에서의 믹싱, 혹은 믹싱 엔지니어의 모바일 믹싱, 아니면 마스터링 엔지니어의 컨슈머 환경에서의 모니터링과 같은 것 말이다. 필자는 현재 유튜브의 클래식 음악 채널 ‘월요클래식’에서 음향 감독을 담당하고 있다. 매번의 음향을 담당하는 것은 아니고 준비가 된 연주회의 경우에 투입이 되는데, 한 번의 라이브 현장과 한 번의 녹음 현장에서 디렘 Pro를 메인 모니터링 장비로 사용했으며, 또 모바일 믹싱 모니터링 장비로 사용했다. 대개 이 경우 고성능의 헤드폰을 사용하게 되는데, 필자는 거추장스러운 헤드폰보다는 휴대가 간편한 이어폰을 선호하기 때문에 필요충분한 성능만 내준다면 이어폰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여러 작업에 투입해본 결과를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부분의 작업에서 헤드폰을 대체하기에 충분한 성능을 디렘 Pro는 훌륭하게 발휘해줬다. 엄밀히 말해서 헤드폰 특유의 풍성한 표현력이나 광대역 재생에서는 아쉬운 점을 분명 보이기는 하지만 전반적인 작업의 대세에는 영향을 주지 않을 정도의 높은 성능이다. 또한 헤드폰보다 더 좋은 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압도적인 차음 성능이다. 아무리 밀폐형 헤드폰이라고 해도 늘 차음 성능이 아쉬운게 라이브 현장이다. 특히 안경을 쓰는 유저라면 반드시 이어패드 사이에 틈이 생기기 때문에 차음 성능은 더욱 떨어진다. 시끄러운 라이브 현장에서 디렘 Pro 특유의 차음성은 정밀한 믹싱에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필자는 예배 믹싱 현장에도 투입해봤는데, 많은 교회의 예배가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전환된 지금, 현장 음향보다도 헤드폰 모니터링이 더욱 중요한 시대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상당 수의 교회가 별도의 믹싱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조용한 부스 환경을 갖춰놓지는 않았다. 라이브 믹싱을 중요시하기에 별도 부스가 없는 교회도 많다. 이 경우 디렘 Pro가 매우 좋은 대안이 된다. 제 아무리 시끄러운 현장이라고 해도 방해없이 소리의 원음을 파악하고 모니터링할 수 있어서 편하게 작업에 임할 수 있었다. 비단 예배 현장 뿐만 아니라 부스가 따로 있지 않은 유튜브 스트리밍 녹화 현장이나 기타 다른 현장에서 디렘 Pro는 제 역할을 충분히 해줄 것이다. 특정 현장에서는 오히려 헤드폰보다도 훨씬 나은 결과를 들려준다.


중립적인 사운드 캐릭터

디렘 Pro의 사운드 캐릭터는 지극히 중립적이다. 같은 드라이버를 사용하고 비슷한 지점을 지향한 디렘 디 어쿠스티션과는 다소 다른데, 디렘 Pro는 가리는 장르 없이 어떤 음악에서나 모니터링 하기 좋은 ‘장비적’인 느낌을 준다면 디렘 디 어쿠스티션은 섬세하고 예쁜 느낌이 강해 특정 상황이나 장르에 더 특화된 성향이다. 솔직히 말해서 처음 들었을 때 ‘이거다!’하고 딱 꽂힌 제품은 디렘 디 어쿠스티션이다. 하지만 장비로서 여러 상황에 투입해본 결과 생각이 다소 바뀌었다. 이제 필자는 감상용으로는 디렘 디 어쿠스티션을, 그리고 작업용으로는 디렘 Pro를 투입하고 있다. 사운드 캐릭터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저음, 중음, 고음이 나무랄데 없이 균형잡혀 있으며 그 어떤 특징을 찾기 힘들 정도로 중립적이다. 저음의 느낌은 현장 엔지니어들로부터 매우 호평받은 KASA 에디션의 그것과 매우 흡사하다. 하지만 그 깊이와 넓이는 한층 더 커진 느낌이다. KASA 에디션에 비해 약 3배 정도 비싼 가격이지만 그 이상의 가치는 충분히 해낸다고 생각한다. 전반적으로 ‘다소 재미없고’, ‘약간 어둡고’ 등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이전의 소니캐스트 이어폰들에 비해서 확연한 성능 향상이 돋보인다. 그래서 중립적인데도 불구하고 감상의 재미를 놓치지 않았다. 왜곡이 느껴지는 것도 아닌데 꽉 차는 사운드 캐릭터, 그리고 귀가 즐거운 느낌은 이제야 소니캐스트가 정립해 낸 ‘고급스러운 중립’이라는 시그니쳐 캐릭터인 것 같아서 반갑기까지 하다. 저역은 양감면에서 충분하지만 아주 과하지 않으면서도 부드럽고 섬세하며, 중역대는 높은 해상력으로 귀를 간지럽히지만 자극적인 대역이 기존 제품들에 비해 확연히 줄어들어 오랜 청취에도 편한하다. 고역은 부드러우면서도 화려해 녹음 성분에 함유된 공간의 잔향이 투명하게 모니터링된다. 전반적으로 투명하면서도 높은 성능을 갖고 있기에 보컬이나 각 악기의 컴프레싱의 정도까지 확연하게 들린다. 뭔가 귀에 쏙 들어오고 화려한 캐릭터를 가진 이어폰에 비해 밋밋한 점을 지울 수는 없지만 모니터링의 정확성으로 봤을 때는 디렘 Pro 정도의 제품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며, 가격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필자가 종사하는 로케이션 레코딩 현장에서는 좋은 헤드폰이 필수이지만 이제는 디렘 Pro로 좀 더 간편하게 레코딩 및 현장 믹싱 작업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음향 엔지니어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이어폰

이어폰이 헤드폰을 대체할 수 있을까? 엄밀히 말하자면 성능면에서 같은 값이라면 당연히 헤드폰이 우세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현장에서는 이어폰이 더 나은 결과물로 이어지게 되는 그런 조건들이 너무나도 많다. 앞서 언급했듯이 헤드폰 특유의 형편없는 차음성은 라이브 현장에서 정확한 송출용 믹싱을 방해하는 가장 큰 주범이다. 현장에서 큰 악기음을 이기고 정확히 마이크로폰으로 픽업되는 소리만을 모니터링해야 하는 필드레코딩 분야도 마찬가지다. 급히 프로젝트를 완성해야 하는데 랩탑과 DAC만 챙겨야 하는 경우도 생각해보자. 헤드폰을 챙기려면 별도의 가방 혹은 모두를 담을 수 있는 매우 큰 백팩이 필요하지만 이어폰으로 작업이 가능하다면 캐주얼한 백팩이나 심지어 서류가방에도 모든게 담긴다. 극도의 모바일 환경을 지향하는 엔지니어, 그리고 헤드폰을 대체할 수 있는 이어폰을 찾는 모든 엔지니어들에 게 소니캐스트 디렘 Pro를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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