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무제 기자
인이어 모니터링의 새로운 기준을 세우다 L-Acoustics Contour XO
흔히 ‘인이어 모니터’라고 하면 믹싱용이 아닌 무대에서 아티스트가 퍼포먼스를 할 때 사용하는 ‘스테이지 모니터’의 일종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번에 다룰 주제는 그 용도가 아닌, 믹싱용 레퍼런스 장비로서의 모니터링 장비이다. 바로 L-Acoustics에서 발매한 Contour XO 인이어 이어폰이다. 본지의 금년 1월호에 잠시 소개한 이 제품은 L-Acoustics와 고가의 커스텀 인이어 제품을 생산하는 JH Audio의 합작으로 만들어졌다. 다중 BA(Balanced Armature) 드라이버를 쓰면서도 특별하게 설계한 웨이브가이드를 이용해 위상왜곡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한 것이 꼭 L-Acoustics가 투어링용 라인어레이 스피커를 이 세상에 처음 내놓았을 때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살짝 웃음도 나왔다. L-Acoustics에서 가장 작고도 저렴한(?) 축에 드는 스피커(?)인 이 제품은 실전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까?
크로스오버 회로와 전용 7핀 커넥터를 통해 10개의 드라이버가 3웨이로 각각 구동되는 방식이다.
L-Acoustics 의 창립자이자 대표인 Christian Heil(좌), 그리고 JH Audio 의 창립자이자 대표인 Jerry Harvey(우).
L-Acoustics의 DNA가 가득 담기다
어쨌든 엄지 손가락 한 마디보다도 작은 이 제품에는 무려 10개의 BA 드라이버가 탑재되었다. 구조로는 3way를 채택했으니 그야말로 ‘작은 라인어레이 시스템’이라고 불려도 손색없다. 드라이버 구성을 좀 더 살펴보면, 4개의 LF 드라이버, 2개의 MF 드라이버, 4개의 HF 드라이버가 조합되어 10Hz~20kHz에 달하는 대역을 표현해낸다. 이렇게 드라이버가 많아지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위상 왜곡 문제가 생기는데, 사실 인이어 제품에서 이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할 방법이 딱히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실제로 많은 프리미엄 BA 드라이버 제품을 실제로 들어보면 분명히 표현하는 대역은 엄청나게 넓고 표현력도 디테일하며 섬세한 음을 들려주는 반면, 지나치게 산만하면서도 뭔가 뚜렷하지 않은 부분이 있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L-Acoustics는 전 세계에서 위상 왜곡을 가장 잘 다루는 회사답게 이 문제를 자사가 자랑하는 WST(Wavefront Sculpture Technology)를 통해 멋지게 해결했다. 또한 필터링 및 위상정렬 문제는 전용 7핀 커넥터와 패시브 필터를 통해 근본적으로 해결했다. 현재 출시된 다중 BA 인이어 제품들 중 이 정도로 적극적이면서 완벽하게 위상 왜곡에 대한 대처를 해낸 제품은 두 배는 더 비싼 제품 중에서도 없다.
실제로 제품을 보면 케이블 중간에 새끼손가락 한 마디보다 작은 뭔가가 있다. 이 조그만 장비(?)는 LF의 양을 조절하는 일종의 EQ 역할을 함과 동시에 7핀의 커넥터를 통해 3웨이 드라이버 각각을 구동하는 크로스오버 프로세서의 역할을 겸한다. 아마 이 제품이야말로 제대로 된 크로스오버 필터가 갖춰진 다중 드라이버 이어폰이 아닐까 싶다.
단출하지만 고급스러운 구성
이제 많은 음향 엔지니어들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프리미엄 다중 BA 이어폰 시장의 형성 가격은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필자의 입장에서 합리적이라고 느껴졌던 경우라면 중국산 제조사가 자사의 자체 브랜드를 걸고 저렴하면서도 꽤 괜찮은 품질로 제조한 소수의 경우밖에 없었다. 좋게 말하면 시장이 크지 않지만 소비자들의 기대치가 높아 프리미엄 제품 위주로 형성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거품이 낀 시장이다. 그런데 이 제품의 가격은 L-Acoustics라서 ‘이 정도 가격을 할 것’이라는 우려를 박살내는 수준이다. 사실, 필자는 이 제품의 구성과 스펙, 특히 별도의 크로스오버 회로를 구성하여 3웨이로 구동한다는 점에서 지금의 가격보다 대략 두 배 정도를 예상했었다. 물론 일반적인 이어폰이나 헤드폰을 생각해본다면 여전히 ‘헉’ 소리가 나는 가격이긴 하지만, 필자의 말을 믿어도 된다. 이 시장에서 이 정도면 오히려 싼 편이다.
어쨌든 크지 않은 박스 포장을 열면 알루미늄 케이스가 보인다. 마치 캔처럼 보이긴 하는데, 실제로 깡통 캔은 아니고 꽤나 묵직하고 두께를 자랑하는 그런 케이스이다. 제품 보호에는 확실히 탁월하겠지만, 이 제품이 프로페셔널 음향 엔지니어나 뮤지션에게도 각광받을 제품이라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좀 더 휴대가 편한 파우치 정도는 동봉해도 좋았을 것 같다. 물론 이 케이스는 Audiophile 들에게는 고급스러움으로 각광받을테지만 말이다. 그 외에 3종의 컴플라이 팁, 그리고 3종의 실리콘 팁이 동봉되며, 베이스를 조절하기 위한 미니 드라이버와 클리닝 툴 킷이 함께 제공된다.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연장 케이블이라든가, 1/4인치 TRS 변환젠더 등이 함께 제공되지 않아 약간 아쉽긴 하지만, 큰 결점은 아니다.
제 성능을 끌어내기 위한 준비
처음 듣자마자 감지된 것은 약간의 화이트노이즈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제품의 임피던스는 8Ω에 불과하다. 흔히 임피던스가 낮다고 칭해지는 제품들보다 1/2~1/4 수준에 이른다. 게다가 감도는 116dB/1mW의 미친듯한 수치를 자랑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다중 BA 제품들이 대다수 이런 특성들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제품을 제대로 울리려면 정말 좋은 헤드폰 앰프가 있어야 한다. 이는 600Ω짜리 하이-임피던스형 레퍼런스 헤드폰들이 좋은 헤드폰 앰프를 요구하는 것과는 조금 맥락이 다르다. 하이-임피던스 헤드폰의 경우에는 제대로 된 구동을 위해서는 출력 볼티지가 최소한 2Vrms, 최대 4~5Vrms는 되어야 여유있게 구동이 가능하다면, Contour XO같은 타입의 제품은 구동을 위해 높은 출력 볼티지는 필요가 없지만 자체 노이즈가 극도로 낮아야 하며 되도록 낮은 출력 임피던스를 갖춰 어떠 인덕턴스나 커패시턴스 상황에서도 왜곡 없이 일관된 성능을 내주는 고성능 헤드폰 앰프가 필요하다. 전자는 말하자면 양(量)에 관한 것이라면, 후자는 질(質)에 관한 것이다. 프로페셔널 음향 환경에 익숙한 독자들을 위해 스피커로 비유하자면 전자는 되도록 고출력이 필요한, 허용입력이 넉넉한 낮은 효율의 스피커라면, 후자는 앰프의 구동 한계 임피던스에 가까우면서도 굉장히 높은 효율의 민감한 스피커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제품을 구매하면서 되도록이면 섬세한 고품질의 헤드폰 앰프를 함께 구매하는 것을 추천한다. 필자가 추천하는 자체 노이즈 스펙은 1uVrms, 혹은 그 이하에 준하는 값을 충족시켜야 할 것이다.
압도적인 대역폭과 스테이징, 그리고 자연스러움
귀에 걸고 음악을 듣자마자 느낀 것은 ‘위화감 없는 스피커’와 같은 결이다. 일반적으로 다중 BA 드라이버 이어폰은 처음 귀에 걸었을 때 굉장히 넓은 대역폭과 스테이징으로 화려하게 귀를 사로잡으면서도 뭔가 알수없는 위화감을 준다. 대개 이 위화감의 정체는 위상 왜곡으로 인한 뿌연 느낌이다. 워낙 표현 대역이 넓으니 명료하게 느껴지다가도 특정 대역이 마치 노치필터를 쓴 것처럼 비게 되고, 그래서 여러모로 합이 잘 안맞는 오케스트라처럼 정신없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Contour XO의 놀라운 점은 압도적인 대역폭과 스테이징을 실현하면서도 이런 류의 왜곡이 전혀 없이 자연스러움을 전달한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필자는 다중 BA 이어폰의 마니아는 아니다. 전반적으로 ‘잘 설계되고 만들어진’ 다이나믹 드라이버 이어폰이 종합적으로는 더 우수한 성능을 낸다고 믿는 편이었다. 하지만 Contour XO는 이 기준에서 예외가 되어도 좋을 것 같다. 이런 형태의 고가 이어폰 중에서는 Shure KSE 정전식 이어폰과 함께 보기 드물게 넓은 대역과 펀치감, 효율성, 민감성, 자연스러움을 두루 만족시킨다. 필자는 솔직히 다중 BA 드라이버 제품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이 단 한번도 없지만 이 제품만은 예외이다. 실로 오랫만에 생긴 소유욕이다. LF 컨투어를 가운데 둔 후 사운드 느낌을 좀 더 설명하자면, 일반적인 인이어 제품보다는 굉장히 실제 공연장 스피커와 같은 느낌을 준다. 그야말로 L-Acoustics 다운 튜닝이요 사운드 설정이라 하겠다. 저음의 질감이나 중역대의 표현력이 굉장히 자연스러우며 고역은 끝없이 뻗어나가지만 결코 자극적이지 않다. 전반적으로 평탄한 특성을 보이긴 하지만 저음과 고음쪽에 약간 더 무게감을 준 느낌으로 인해 내밀한 느낌의 곡보다는 라이브 공연 상황에서 더욱 강한 모습을 보인다. 악기로 말하자면, 보컬보다는 다른 악기나 배경음을 좀 더 잘 표현하는 모양새다.
많은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것이 LF 컨투어 노브일텐데, 우선 조절 범위는 0~+15dB에 달한다. 그러니까 노브를 중간쯤에 뒀다면 5-8dB 정도 부스트된 모양새일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청취해보면 중간 쯤에 둔 것이 필자에게는 가장 자연스럽게 들린다. 전반적인 대역폭은 서브우퍼와 비슷하지만, 약간 더 높은 대역까지 커버하는 느낌으로 크로스오버 포인트는 약 200Hz부근에서 설정된 것 같다. Q는 상당히 낮은 값으로 컨투어 조정시 넓은 대역이 움직이는 느낌이다. 당연히 인이어 제품은 스피커와는 다르기 때문에 필터 차수를 높게 설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고 말이다.
Immersive Sound 시대에 걸맞은 이어폰
다중 BA 제품임에도 위상 왜곡이 현저히 적으니 정교하면서도 일관된 표현력이 필요한 Immersive Sound 작업에도 잘 어울린다. 실제로 필자는 Ambisonics 툴을 이용해 3차원 믹싱 작업을 종종 수행하는데, 이 제품으로 모니터링을 해보니 웬만한 다이나믹 헤드폰과 다르지 않은 수준의 HRTF의 재현 성능을 보인다. 사실 L-Acoustics가 Contour XO를 출시한 배경에는 L-ISA의 보급과도 관련이 있다. L-ISA는 시장에서 거의 유일하게 성공적이면서도 실질적인 사용 사례를 갖고 있는 거의 유일한 라이브용 Immersive Sound 솔루션이다. 그런데 이런 류의 솔루션은 늘 그렇듯이 정교한 프리-프로덕션 과정이 필요하다. 프리-프로덕션에서 L-ISA 프로세서가 필요한 것은 둘째 치더라도, 스피커 레이아웃도 현장과 최대한 비슷하게 구성해야만 제대로 된 준비가 가능한데, 이것이 쉽게 가능할리가 없다. 어느 정도 3차원 공간을 비슷하게라도 구성할 수 있다면 좋은데 만약에 예컨대 투어링 도중 Immersive 패닝에 약간의 수정을 가해야 한다거나 특정 객체 소스의 위치를 수정해야 한다면 이어폰이나 헤드폰으로밖에 방법이 없다. 그래서 L-ISA는 바이노럴 업데이트를 준비하고 있다. 아마 기사가 나가는 시점에는 발표되었을지도 모르겠는데, 어쨌든 Contour XO는 L-ISA 시스템에 통합되는 바이노럴 인이어 모니터링 장비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총평
완벽할 것만 같은 이 제품도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정도 급의 다중 BA 드라이버 제품이 그렇듯이 무려 10개의 드라이버를 내장하고 있기에 상당히 크고 무거운 편이며, 따라서 착용감각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 그나마 귀에 압력이나 자극을 주는 디자인은 아니기 때문에 다행히 장시간 청취에도 크게 고통스럽지는 않다. 또한 케이블이 상당히 두꺼우며 묵직하다. 거기에 컨투어 조절부까지 달려있기 때문에 거친 라이브 현장에서 신경 안쓰고 움직이긴 쉽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BA 드라이버는 충격에 상당히 약한 편이기 때문에 이 제품을 현장에서 운용할 독자들은 각별히 취급에 주의를 요하기 바란다. 워낙 작은 드라이버가 밀집되었기 때문에 어떤 드라이버가 고장났는지 찾기 쉽지 않고 수리도 매우 어려울 것이다.
이런 몇 가지 불편함이 있지만, 업계 표준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L-ISA 시스템에 최적화된 이어폰이라는 것, 그리고 업계에서 최고의 라이브용 스피커로 정평난 L-Acoustics 스피커와 가장 흡사한 소리를 내는 이어폰이라는 점은 여전히 이 제품의 구매욕을 자극하는 부분이다. L-Acoustics 시스템을 운용하는 엔지니어라면 하나쯤 갖추고 있기를 강력히 추천하며, 헤드폰이 아닌, 제대로 된 인이어로 현장 믹싱을 하길 원하는 엔지니어에게도 적극 추천한다.
글 이무제 기자
인이어 모니터링의 새로운 기준을 세우다 L-Acoustics Contour XO
흔히 ‘인이어 모니터’라고 하면 믹싱용이 아닌 무대에서 아티스트가 퍼포먼스를 할 때 사용하는 ‘스테이지 모니터’의 일종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번에 다룰 주제는 그 용도가 아닌, 믹싱용 레퍼런스 장비로서의 모니터링 장비이다. 바로 L-Acoustics에서 발매한 Contour XO 인이어 이어폰이다. 본지의 금년 1월호에 잠시 소개한 이 제품은 L-Acoustics와 고가의 커스텀 인이어 제품을 생산하는 JH Audio의 합작으로 만들어졌다. 다중 BA(Balanced Armature) 드라이버를 쓰면서도 특별하게 설계한 웨이브가이드를 이용해 위상왜곡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한 것이 꼭 L-Acoustics가 투어링용 라인어레이 스피커를 이 세상에 처음 내놓았을 때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살짝 웃음도 나왔다. L-Acoustics에서 가장 작고도 저렴한(?) 축에 드는 스피커(?)인 이 제품은 실전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까?
크로스오버 회로와 전용 7핀 커넥터를 통해 10개의 드라이버가 3웨이로 각각 구동되는 방식이다.
L-Acoustics 의 창립자이자 대표인 Christian Heil(좌), 그리고 JH Audio 의 창립자이자 대표인 Jerry Harvey(우).
L-Acoustics의 DNA가 가득 담기다
어쨌든 엄지 손가락 한 마디보다도 작은 이 제품에는 무려 10개의 BA 드라이버가 탑재되었다. 구조로는 3way를 채택했으니 그야말로 ‘작은 라인어레이 시스템’이라고 불려도 손색없다. 드라이버 구성을 좀 더 살펴보면, 4개의 LF 드라이버, 2개의 MF 드라이버, 4개의 HF 드라이버가 조합되어 10Hz~20kHz에 달하는 대역을 표현해낸다. 이렇게 드라이버가 많아지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위상 왜곡 문제가 생기는데, 사실 인이어 제품에서 이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할 방법이 딱히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실제로 많은 프리미엄 BA 드라이버 제품을 실제로 들어보면 분명히 표현하는 대역은 엄청나게 넓고 표현력도 디테일하며 섬세한 음을 들려주는 반면, 지나치게 산만하면서도 뭔가 뚜렷하지 않은 부분이 있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L-Acoustics는 전 세계에서 위상 왜곡을 가장 잘 다루는 회사답게 이 문제를 자사가 자랑하는 WST(Wavefront Sculpture Technology)를 통해 멋지게 해결했다. 또한 필터링 및 위상정렬 문제는 전용 7핀 커넥터와 패시브 필터를 통해 근본적으로 해결했다. 현재 출시된 다중 BA 인이어 제품들 중 이 정도로 적극적이면서 완벽하게 위상 왜곡에 대한 대처를 해낸 제품은 두 배는 더 비싼 제품 중에서도 없다.
실제로 제품을 보면 케이블 중간에 새끼손가락 한 마디보다 작은 뭔가가 있다. 이 조그만 장비(?)는 LF의 양을 조절하는 일종의 EQ 역할을 함과 동시에 7핀의 커넥터를 통해 3웨이 드라이버 각각을 구동하는 크로스오버 프로세서의 역할을 겸한다. 아마 이 제품이야말로 제대로 된 크로스오버 필터가 갖춰진 다중 드라이버 이어폰이 아닐까 싶다.
단출하지만 고급스러운 구성
이제 많은 음향 엔지니어들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프리미엄 다중 BA 이어폰 시장의 형성 가격은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필자의 입장에서 합리적이라고 느껴졌던 경우라면 중국산 제조사가 자사의 자체 브랜드를 걸고 저렴하면서도 꽤 괜찮은 품질로 제조한 소수의 경우밖에 없었다. 좋게 말하면 시장이 크지 않지만 소비자들의 기대치가 높아 프리미엄 제품 위주로 형성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거품이 낀 시장이다. 그런데 이 제품의 가격은 L-Acoustics라서 ‘이 정도 가격을 할 것’이라는 우려를 박살내는 수준이다. 사실, 필자는 이 제품의 구성과 스펙, 특히 별도의 크로스오버 회로를 구성하여 3웨이로 구동한다는 점에서 지금의 가격보다 대략 두 배 정도를 예상했었다. 물론 일반적인 이어폰이나 헤드폰을 생각해본다면 여전히 ‘헉’ 소리가 나는 가격이긴 하지만, 필자의 말을 믿어도 된다. 이 시장에서 이 정도면 오히려 싼 편이다.
어쨌든 크지 않은 박스 포장을 열면 알루미늄 케이스가 보인다. 마치 캔처럼 보이긴 하는데, 실제로 깡통 캔은 아니고 꽤나 묵직하고 두께를 자랑하는 그런 케이스이다. 제품 보호에는 확실히 탁월하겠지만, 이 제품이 프로페셔널 음향 엔지니어나 뮤지션에게도 각광받을 제품이라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좀 더 휴대가 편한 파우치 정도는 동봉해도 좋았을 것 같다. 물론 이 케이스는 Audiophile 들에게는 고급스러움으로 각광받을테지만 말이다. 그 외에 3종의 컴플라이 팁, 그리고 3종의 실리콘 팁이 동봉되며, 베이스를 조절하기 위한 미니 드라이버와 클리닝 툴 킷이 함께 제공된다.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연장 케이블이라든가, 1/4인치 TRS 변환젠더 등이 함께 제공되지 않아 약간 아쉽긴 하지만, 큰 결점은 아니다.
제 성능을 끌어내기 위한 준비
처음 듣자마자 감지된 것은 약간의 화이트노이즈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제품의 임피던스는 8Ω에 불과하다. 흔히 임피던스가 낮다고 칭해지는 제품들보다 1/2~1/4 수준에 이른다. 게다가 감도는 116dB/1mW의 미친듯한 수치를 자랑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다중 BA 제품들이 대다수 이런 특성들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제품을 제대로 울리려면 정말 좋은 헤드폰 앰프가 있어야 한다. 이는 600Ω짜리 하이-임피던스형 레퍼런스 헤드폰들이 좋은 헤드폰 앰프를 요구하는 것과는 조금 맥락이 다르다. 하이-임피던스 헤드폰의 경우에는 제대로 된 구동을 위해서는 출력 볼티지가 최소한 2Vrms, 최대 4~5Vrms는 되어야 여유있게 구동이 가능하다면, Contour XO같은 타입의 제품은 구동을 위해 높은 출력 볼티지는 필요가 없지만 자체 노이즈가 극도로 낮아야 하며 되도록 낮은 출력 임피던스를 갖춰 어떠 인덕턴스나 커패시턴스 상황에서도 왜곡 없이 일관된 성능을 내주는 고성능 헤드폰 앰프가 필요하다. 전자는 말하자면 양(量)에 관한 것이라면, 후자는 질(質)에 관한 것이다. 프로페셔널 음향 환경에 익숙한 독자들을 위해 스피커로 비유하자면 전자는 되도록 고출력이 필요한, 허용입력이 넉넉한 낮은 효율의 스피커라면, 후자는 앰프의 구동 한계 임피던스에 가까우면서도 굉장히 높은 효율의 민감한 스피커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제품을 구매하면서 되도록이면 섬세한 고품질의 헤드폰 앰프를 함께 구매하는 것을 추천한다. 필자가 추천하는 자체 노이즈 스펙은 1uVrms, 혹은 그 이하에 준하는 값을 충족시켜야 할 것이다.
압도적인 대역폭과 스테이징, 그리고 자연스러움
귀에 걸고 음악을 듣자마자 느낀 것은 ‘위화감 없는 스피커’와 같은 결이다. 일반적으로 다중 BA 드라이버 이어폰은 처음 귀에 걸었을 때 굉장히 넓은 대역폭과 스테이징으로 화려하게 귀를 사로잡으면서도 뭔가 알수없는 위화감을 준다. 대개 이 위화감의 정체는 위상 왜곡으로 인한 뿌연 느낌이다. 워낙 표현 대역이 넓으니 명료하게 느껴지다가도 특정 대역이 마치 노치필터를 쓴 것처럼 비게 되고, 그래서 여러모로 합이 잘 안맞는 오케스트라처럼 정신없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Contour XO의 놀라운 점은 압도적인 대역폭과 스테이징을 실현하면서도 이런 류의 왜곡이 전혀 없이 자연스러움을 전달한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필자는 다중 BA 이어폰의 마니아는 아니다. 전반적으로 ‘잘 설계되고 만들어진’ 다이나믹 드라이버 이어폰이 종합적으로는 더 우수한 성능을 낸다고 믿는 편이었다. 하지만 Contour XO는 이 기준에서 예외가 되어도 좋을 것 같다. 이런 형태의 고가 이어폰 중에서는 Shure KSE 정전식 이어폰과 함께 보기 드물게 넓은 대역과 펀치감, 효율성, 민감성, 자연스러움을 두루 만족시킨다. 필자는 솔직히 다중 BA 드라이버 제품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이 단 한번도 없지만 이 제품만은 예외이다. 실로 오랫만에 생긴 소유욕이다. LF 컨투어를 가운데 둔 후 사운드 느낌을 좀 더 설명하자면, 일반적인 인이어 제품보다는 굉장히 실제 공연장 스피커와 같은 느낌을 준다. 그야말로 L-Acoustics 다운 튜닝이요 사운드 설정이라 하겠다. 저음의 질감이나 중역대의 표현력이 굉장히 자연스러우며 고역은 끝없이 뻗어나가지만 결코 자극적이지 않다. 전반적으로 평탄한 특성을 보이긴 하지만 저음과 고음쪽에 약간 더 무게감을 준 느낌으로 인해 내밀한 느낌의 곡보다는 라이브 공연 상황에서 더욱 강한 모습을 보인다. 악기로 말하자면, 보컬보다는 다른 악기나 배경음을 좀 더 잘 표현하는 모양새다.
많은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것이 LF 컨투어 노브일텐데, 우선 조절 범위는 0~+15dB에 달한다. 그러니까 노브를 중간쯤에 뒀다면 5-8dB 정도 부스트된 모양새일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청취해보면 중간 쯤에 둔 것이 필자에게는 가장 자연스럽게 들린다. 전반적인 대역폭은 서브우퍼와 비슷하지만, 약간 더 높은 대역까지 커버하는 느낌으로 크로스오버 포인트는 약 200Hz부근에서 설정된 것 같다. Q는 상당히 낮은 값으로 컨투어 조정시 넓은 대역이 움직이는 느낌이다. 당연히 인이어 제품은 스피커와는 다르기 때문에 필터 차수를 높게 설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고 말이다.
Immersive Sound 시대에 걸맞은 이어폰
다중 BA 제품임에도 위상 왜곡이 현저히 적으니 정교하면서도 일관된 표현력이 필요한 Immersive Sound 작업에도 잘 어울린다. 실제로 필자는 Ambisonics 툴을 이용해 3차원 믹싱 작업을 종종 수행하는데, 이 제품으로 모니터링을 해보니 웬만한 다이나믹 헤드폰과 다르지 않은 수준의 HRTF의 재현 성능을 보인다. 사실 L-Acoustics가 Contour XO를 출시한 배경에는 L-ISA의 보급과도 관련이 있다. L-ISA는 시장에서 거의 유일하게 성공적이면서도 실질적인 사용 사례를 갖고 있는 거의 유일한 라이브용 Immersive Sound 솔루션이다. 그런데 이런 류의 솔루션은 늘 그렇듯이 정교한 프리-프로덕션 과정이 필요하다. 프리-프로덕션에서 L-ISA 프로세서가 필요한 것은 둘째 치더라도, 스피커 레이아웃도 현장과 최대한 비슷하게 구성해야만 제대로 된 준비가 가능한데, 이것이 쉽게 가능할리가 없다. 어느 정도 3차원 공간을 비슷하게라도 구성할 수 있다면 좋은데 만약에 예컨대 투어링 도중 Immersive 패닝에 약간의 수정을 가해야 한다거나 특정 객체 소스의 위치를 수정해야 한다면 이어폰이나 헤드폰으로밖에 방법이 없다. 그래서 L-ISA는 바이노럴 업데이트를 준비하고 있다. 아마 기사가 나가는 시점에는 발표되었을지도 모르겠는데, 어쨌든 Contour XO는 L-ISA 시스템에 통합되는 바이노럴 인이어 모니터링 장비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총평
완벽할 것만 같은 이 제품도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정도 급의 다중 BA 드라이버 제품이 그렇듯이 무려 10개의 드라이버를 내장하고 있기에 상당히 크고 무거운 편이며, 따라서 착용감각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 그나마 귀에 압력이나 자극을 주는 디자인은 아니기 때문에 다행히 장시간 청취에도 크게 고통스럽지는 않다. 또한 케이블이 상당히 두꺼우며 묵직하다. 거기에 컨투어 조절부까지 달려있기 때문에 거친 라이브 현장에서 신경 안쓰고 움직이긴 쉽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BA 드라이버는 충격에 상당히 약한 편이기 때문에 이 제품을 현장에서 운용할 독자들은 각별히 취급에 주의를 요하기 바란다. 워낙 작은 드라이버가 밀집되었기 때문에 어떤 드라이버가 고장났는지 찾기 쉽지 않고 수리도 매우 어려울 것이다.
이런 몇 가지 불편함이 있지만, 업계 표준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L-ISA 시스템에 최적화된 이어폰이라는 것, 그리고 업계에서 최고의 라이브용 스피커로 정평난 L-Acoustics 스피커와 가장 흡사한 소리를 내는 이어폰이라는 점은 여전히 이 제품의 구매욕을 자극하는 부분이다. L-Acoustics 시스템을 운용하는 엔지니어라면 하나쯤 갖추고 있기를 강력히 추천하며, 헤드폰이 아닌, 제대로 된 인이어로 현장 믹싱을 하길 원하는 엔지니어에게도 적극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