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인스피레이션 『리딩 & 리스닝 스테이지』
by 구현모 기자, 자료제공: 세종문화회관, 인강오디오(주), 2H Spatial Audio

관객들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객석을 무대에서 바라보는 색다른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무대에 남아 아무도 없는 객석을 본 적이 있나요.”
1980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7인조 그룹 샤프(Sharp)가 선보인 ‘연극이 끝난 후’의 가사 한 구절이다. 객석과 무대를 번갈아 홀로 남겨진 감정을 서정적으로 풀어낸 이 곡은 이후 여러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와 커버로 이어지며 오랜 시간 회자됐다. 그러나 노랫말과 달리, 관객이 실제로 무대 위에 홀로 서서 객석을 바라보는 경험은 좀처럼 허락되지 않는다.
일반적인 공연 관람의 구조는 명확하다. 관객은 객석에 앉아 무대를 향해 바라보고, 무대 위 아티스트는 조명을 받으며 그 시선을 마주한다. 무대와 객석은 분리되어 있고, 시선의 방향 역시 고정돼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질서를 정반대로 뒤집은 공연이 기획됐다. 관객이 객석이 아닌 무대 위에 오르고, 오히려 텅 빈 객석을 바라보는 위치에 서는 공연이다.
세종문화회관의 ‘세종 인스피레이션(Sejong Inspiration)’ 2026년 첫 프로그램 ‘리딩 & 리스닝 스테이지’는 관객을 무대 위로 초대함으로써 공연의 기본 구도를 바꿨다. 관객은 기존 객석이 아닌 무대 위로 입장해 자유롭게 자리를 잡는다. 자연스럽게 시선의 방향도 달라진다. 더 이상 정면만을 응시하는 구조가 아니다. 세종문화회관 공연 관계자는 “보통 공연장에 들어오면 관객은 앞만 보게 되지만, 이 공연은 관객이 무대의 사용자가 되어 공간을 자유롭게 경험하도록 설계했습니다”라고 설명한다. 관객은 수동적으로 공연을 소비하는 존재가 아니라, 무대 위에서 공간을 점유하고 감각적으로 체험하는 주체가 된다.
특히 올해 ‘리딩 & 리스닝 스테이지’는 2026 세종시즌의 주요 공연을 더욱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도록 문학동네와 협업해 구성됐다. 무대 위에는 큐레이션된 시집이 배치됐고, 관객은 음악을 들으며 자유롭게 책을 꺼내 읽었다. 전체 프로그램은 약 100분간 진행됐으며, 1부에서는 음악 감상 이후 시 낭송과 토크가 이어졌고, 2부에서 다시 음악 감상으로 마무리됐다. 관객들은 공연을 바라보는 대신, ‘읽기’와 ‘듣기’를 함께 하며 그 안에 머물며 각자의 속도로 감상했다. 음악은 배경이 아니라 중심이 됐고, 문학은 해설이 아니라 또 하나의 감각이 됐다.
세종문화회관 기획자 강봉진 과장은 “요즘 극장이 위기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OTT 같은 영상 매체부터 리조트나 놀이공원 등 다양한 체험 공간이 많아졌기 때문이죠. 이런 상황 속에서 극장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은 무엇일까 고민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가끔 무대에 올라 객석을 바라보면 그 공간이 압도적으로 느껴지곤 했습니다. 그 경험이 이번 공연의 출발점이 됐습니다”라며 공연 기획의 동기를 밝혔다.
이번 공연의 ‘관객을 무대 위로 올려보자’는 발상은 단순히 파격을 위한 선택이 아니다. 관람의 의미를 새롭게 묻는 시도에 가깝다. 관객이 무대의 주인공이 되어 예술적 감정을 함께 나누는 것, 그것이 지금 극장에 필요한 변화이다.


색다르게 책을 읽고, 음악을 듣다
올해 ‘리딩 & 리스닝 스테이지’는 지난해 진행한 ‘리스닝 스테이지’의 확장판이다. 전작이 빈백에 누워 음악을 감상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에는 북카페 무드로 무대를 구성해 ‘읽기’와 ‘듣기’를 함께 체험하도록 설계했다. 무대 위에 조성된 아늑한 공간은 관객의 시선과 체류 방식, 나아가 공간을 인지하는 방식까지 바꿔놓았다. 단순한 감상이 아닌, 머무르는 경험으로 확장된 셈이다.
이번 프로그램에서 사운드는 배경이 아니라 ‘공간 경험을 설계하는 도구’로 기능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스테레오가 아닌 이머시브 사운드 구성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공연의 전체 사운드를 담당한 2H Spatial Audio 윤현철 대표는 “사운드를 일반적인 스테레오로 진행할 수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이머시브를 특별히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공연 구조에 있다. 관객이 객석이 아닌 무대 위에 올라 자유롭게 공간을 점유하는 방식에서는, 소리가 특정 방향에서 전면으로 ‘투사’되는 기존의 확성 구조로는 한계가 있다. 이에 따라 무대 전체를 하나의 청취 영역으로 설정하고, 소리를 한 방향에서 전달하는 대신 공간 안에 ‘배치’하는 이머시브 접근을 택했다. 이는 관객이 어느 위치에 있더라도 음장 균형을 유지하고, 소리의 방향성과 밀도를 보다 자연스럽게 체감하도록 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실제로 관객들은 “같은 음악이 전혀 다르게 들린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위로 향하면서 공간을 올려다보게 된다”는 반응을 보이며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언급했다. 윤현철 대표는 “지난해 운영에서 느꼈던 아쉬움, 특히 앞쪽에서만 형성되는 이미지나 높이 표현의 부족을 보완하고자 했다”며 “올해는 객석 콘셉트 변화와 함께 공간 연출을 보다 적극적으로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관객은 책을 읽다가도 음악의 질감이 달라지는 순간 고개를 들게 된다. 읽는 공연이면서 동시에 ‘올려다보며 듣는’ 공연으로 확장된 것이다.
일반적인 공연이 객석을 기준으로 스피커 배치와 잔향, 반사 특성을 고려해 시스템을 설계한다면, 이번 프로젝트는 출발점부터 달랐다. 관객이 무대 위에 앉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세종문화회관 이효원 감독은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라기보다, 객석이 무대 위로 올라온 것에 가깝다”며 “관객이 무대에 앉는 순간 그 공간이 곧 객석이 되기 때문에, 무대와 객석을 구분하기보다 ‘무대에서 듣는 경험’을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밝혔다. 특히 이날 재생된 플레이리스트는 세종문화회관에서 향후 1년간 진행될 공연에 실제로 사용될 음원들을 미리 소개하는 성격이었다. 그는 “객석에서 확성된 사운드를 듣는 것과 무대에서 직접 확성되는 소리를 듣는 것은 체감이 다르다”며 “무대 사운드 특유의 밀도와 직진성이 관객에게 새로운 인상으로 다가갔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간 조건 역시 흥미로운 변수였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객석 기준으로 고른 커버리지를 구현하기 쉽지 않은 공간으로 알려져 있지만, 무대는 또 다른 특성을 지닌다. 윤현철 대표는 “무대 면적이 넓고 천고가 높으며 좌우와 후면 공간도 충분해 과도한 반사로 인한 왜곡이 상대적으로 적었다”며 “결과적으로 야외와 유사한 조건이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무대 위에 형성된 청취 영역은 비교적 안정적인 직진성과 명료도를 확보할 수 있었다.

메인 믹싱콘솔로 사용된 DiGiCo SD5
이머시브 프로세싱은 Galileo GALAXY 816 두 대로 이뤄졌다.
무대 위에 설계된 360도 이머시브 사운드
이번 공연에 사용된 시스템은 Meyer Sound 기반의 이머시브 구성이다. 전면과 측면, 후면을 Ultra-X 시리즈로 둘러 360도 수평 이미지를 형성하고, 상부에는 UPA-1P와 UPQ-D3를 Up/Down 계층으로 배치해 천장 방향의 이미지를 구체화했다. 저역은 전면 900-LFC와 후면 750-LFC를 병행 운용해 무대 위 관객이 특정 방향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균형을 확보했다. 프로세싱은 Galileo GALAXY 816 두 대로 구성했으며, 음악 재생 계통과 마이크 계통을 분리 운용했다.
윤현철 대표는 “대부분 당일 세팅 후 바로 공연에 들어가는 구조이기 때문에 믹스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결국 준비가 핵심”이라며, “이번에는 연습실에 미니멀 셋업을 구성해 사전 테스트와 믹스를 진행했고, 이 과정이 이머시브 모드 전환과 레벨 밸런스를 안정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대형 이머시브 시스템일수록 현장 대응 시간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사전 검증이 곧 안정성이라는 판단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메인 L/R 소스를 중심축에 두고, 관객 위치를 고려해 리버브 성격의 신호를 별도 레이어로 구성해 공간감을 형성했다. 또한 동일한 L/R 소스를 여러 스피커에 분산 배치해 공간 전반에 스테레오 이미지를 유지하도록 설계했다. 그는 “어느 위치에 앉더라도 레프트·라이트 이미지가 무너지지 않도록 객체를 배치했다”며 “이머시브의 핵심은 스위트스폿을 특정 지점이 아닌 공간 전체로 확장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저역 설계는 더욱 신중하게 접근했다. 이머시브 환경에서는 고역보다 저역의 편차가 체감에 더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윤현철 대표는 “저역은 전 영역에 걸쳐 편차 없이 존재해야 한다”고 전제하며, 이번 공연에서는 센터 서브 구성을 채택했다고 밝혔다. 플라잉 서브 조건은 아니었지만, 바닥 센터 배치를 통해 전 영역에 균일한 저역 에너지를 형성하는 데 주력했다. 그는 “저역이 움직이거나 불균형해지면 체감 변화가 급격하게 나타난다”며 “저역은 연출 요소라기보다 기반이다. 편차 없이 안정적으로 깔아두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공간을 재설계한 이머시브 시스템
인강오디오(주) 신동원 차장이 소개한 시스템 플랜을 보면, 이번 프로젝트는 프로세싱과 스피커 배치가 명확한 역할 분담을 이루고 있다. 프로세싱을 담당한 Galileo GALAXY 816은 대규모 채널 운용과 정밀한 매트릭스 제어가 가능해, 이머시브 환경에서 객체 배치와 레벨 매칭을 세밀하게 다루기에 적합하다. 특히 재생 계통과 마이크 계통을 분리 운용함으로써 공연 중 변수 대응과 시스템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했다.
이머시브 재생 계통은 Meyer Sound 라우드스피커를 중심으로 수평 둘레를 촘촘하게 형성했다. 프론트는 Ultra-X80(Frontal LL, RR)과 Ultra-X40(Frontal L/C/R)으로 구성했으며, 사이드와 리어는 Ultra-X20과 Ultra-X40을 혼합 배치했다. 리어 LL·RR에는 Ultra-X40을 투입해 후면 이미지의 존재감을 확보하고, R·L에는 Ultra-X20을 적용해 과도한 에너지 집중을 피했다. 사이드 역시 Up/Down 포인트를 나눠 Ultra-X20으로 구성해 공간 둘레의 밀도를 균일하게 유지했다.
Ultra-X 시리즈는 컴팩트한 인클로저 대비 높은 SPL과 안정적인 위상 응답 특성을 갖춰, 무대 위처럼 청취 거리가 유동적인 환경에서도 이미지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 유리하다. Ultra-X80은 비교적 긴 투사 거리와 높은 헤드룸을 바탕으로 프론트 축을 안정적으로 형성하고, Ultra-X40과 Ultra-X20은 근거리 필드에서 과도한 에너지 집중 없이 촘촘한 공간 밀도를 구현한다. 결과적으로 전면과 측·후면의 역할이 명확히 구분되면서도 하나의 연속된 음장으로 연결되는 구조다.
상부에 배치된 UPA-1P와 UPQ-D3 역시 공간의 ‘높이’를 설득력 있게 구현하기 위한 선택이다. UPQ-D3는 높은 출력과 정밀한 지향 제어 특성을 통해 상부 센터 이미지의 포커스를 명확히 만들고, UPA-1P는 보다 부드러운 확산 특성으로 상부 레이어를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상부를 단일 레이어가 아닌 Up/Down 이중 계층으로 구성함으로써, 위에서 형성되는 음상의 깊이와 명료도를 동시에 확보했다.
저역은 전면 900-LFC 두 대로 기반을 형성하고, 후면에는 750-LFC를 좌우 배치해 무대 위 청취 저역이 전면 한 방향으로만 집중되지 않도록 설계했다. 900-LFC는 깊고 단단한 저역 확장을 담당하고, 750-LFC는 비교적 빠른 응답 특성으로 저역 윤곽을 정리한다. 전후 분산 배치는 단순한 음압 보강이 아니라, 무대 위 전 영역에 균일한 저주파 필드를 형성하기 위한 전략이다.


임유영 시인과 함께한 시간
기술이 공간의 틀을 만들었다면, 콘텐츠는 그 공간을 ‘사용하는 방식’을 바꾸어 놓았다. 무대 위 객석에는 문학동네가 큐레이션한 시집 27권이 비치됐고, 임유영 시인이 직접 낭독과 대화를 진행했다. 임유영 시인은 “항상 관객으로만 오던 곳에 독자들을 만나러 무대 위에 올라온다고 생각하니 떨렸다”며 “그런데 독자들도 함께 무대 위에 있어 마음이 한결 편안했다”고 말했다. 슈베르트의 음악을 모티브로 한 공연과의 매칭에 대해서는 “운명적인 만남처럼 느껴졌다”고 덧붙였다. ‘관객이 무대 위에 있다’는 설정은 시인에게도, 독자에게도 새로운 감각을 만들어낸 셈이다.
임유영 시인의 첫 시집 『오믈렛』은 서울시발레단이 8월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선보일 컨템퍼러리 발레 ‘죽음과 소녀’와 함께 감상하기 좋은 작품으로 소개됐다. 현장에서 진행된 대담에서는 임유영 시의 결이 비교적 선명하게 짚였다. 명쾌한 결론을 제시하기보다, “선명함과 명쾌함을 기대하는 이에게는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는 방식으로 감각과 감정을 그대로 남겨두는 시. 해석을 강요하기보다 여백을 건네는 태도다.
토크는 ‘죽음과 소녀’의 출발점이 된 시와 슈베르트의 음악적 맥락으로 확장됐다. 임유영 시인은 자신의 시가 음악이 되기보다는 “음악의 소재가 되기를 기다리는 쪽에 가깝다”고 말했다. 동시에 팬데믹 시기 독립 레이블 프로젝트에 참여해 텍스트를 여러 레이어로 쌓는 방식의 협업을 진행했던 경험도 소개했다. 최근에는 영화 음악 작업 과정에서 작사를 맡은 적도 있었지만, “작사와 시 쓰기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라며 앞으로는 “파장이 맞는 협업”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관객과의 Q&A에서는 인상적인 장면도 연출됐다. 한 관객이 “시를 좋아해서라기보다 시에 끌려왔다”며 산문시를 쓰게 된 계기를 묻자, 임유영 시인은 “시를 비교적 늦게 읽기 시작했고, 서점에서 ‘마치 내가 쓴 것만 같은 책’을 발견하면서 산문시에 몰입하게 됐다”고 답했다. 이어 관객에게 “텍스트 없이 시만 듣는 경험은 어땠는지” 되묻기도 했다. 이에 한 관객은 “저자가 직접 낭독해 주어 시를 온전히 이해하는 느낌이 들었고, 낭독자의 감정을 함께 느낄 수 있어 좋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관객이 무대 위 주인공이 되다
‘리딩 & 리스닝 스테이지’는 관람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관객을 무대 위로 올린 순간, 공연장은 더 이상 일방향적 감상의 공간이 아니다. 시선과 몸의 위치, 소리의 방향이 동시에 재조정되며, 관객은 듣는 사람에서 공간 안을 탐색하는 존재로 바뀐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쉽게 객석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무대 위에서 객석을 바라보며 들었던 음악, 천장을 향해 고개를 들게 했던 상부 이미지, 전후좌우에서 형성된 음장의 밀도는 기존의 공연 기억과 다른 방식으로 각인된다. 그것은 단순한 ‘이머시브 체험’이 아니라, 공연장이 관객의 감각을 어떻게 설계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번 프로젝트는 관객의 위치가 바뀌는 순간, 공연의 의미도 함께 달라진다는 걸 보여줬다. 그리고 그 변화는 기획의 언어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동선과 시스템, 그리고 소리를 배치하는 방식이 함께 작동할 때 비로소 새로운 관람 구조가 현실이 된다. ‘리딩 & 리스닝 스테이지’가 남긴 것은 새로운 포맷이 아니라, 공연장이 아직도 재해석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가능성이다.
세종 인스피레이션 『리딩 & 리스닝 스테이지』
by 구현모 기자, 자료제공: 세종문화회관, 인강오디오(주), 2H Spatial Audio
관객들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객석을 무대에서 바라보는 색다른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무대에 남아 아무도 없는 객석을 본 적이 있나요.”
1980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7인조 그룹 샤프(Sharp)가 선보인 ‘연극이 끝난 후’의 가사 한 구절이다. 객석과 무대를 번갈아 홀로 남겨진 감정을 서정적으로 풀어낸 이 곡은 이후 여러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와 커버로 이어지며 오랜 시간 회자됐다. 그러나 노랫말과 달리, 관객이 실제로 무대 위에 홀로 서서 객석을 바라보는 경험은 좀처럼 허락되지 않는다.
일반적인 공연 관람의 구조는 명확하다. 관객은 객석에 앉아 무대를 향해 바라보고, 무대 위 아티스트는 조명을 받으며 그 시선을 마주한다. 무대와 객석은 분리되어 있고, 시선의 방향 역시 고정돼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질서를 정반대로 뒤집은 공연이 기획됐다. 관객이 객석이 아닌 무대 위에 오르고, 오히려 텅 빈 객석을 바라보는 위치에 서는 공연이다.
세종문화회관의 ‘세종 인스피레이션(Sejong Inspiration)’ 2026년 첫 프로그램 ‘리딩 & 리스닝 스테이지’는 관객을 무대 위로 초대함으로써 공연의 기본 구도를 바꿨다. 관객은 기존 객석이 아닌 무대 위로 입장해 자유롭게 자리를 잡는다. 자연스럽게 시선의 방향도 달라진다. 더 이상 정면만을 응시하는 구조가 아니다. 세종문화회관 공연 관계자는 “보통 공연장에 들어오면 관객은 앞만 보게 되지만, 이 공연은 관객이 무대의 사용자가 되어 공간을 자유롭게 경험하도록 설계했습니다”라고 설명한다. 관객은 수동적으로 공연을 소비하는 존재가 아니라, 무대 위에서 공간을 점유하고 감각적으로 체험하는 주체가 된다.
특히 올해 ‘리딩 & 리스닝 스테이지’는 2026 세종시즌의 주요 공연을 더욱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도록 문학동네와 협업해 구성됐다. 무대 위에는 큐레이션된 시집이 배치됐고, 관객은 음악을 들으며 자유롭게 책을 꺼내 읽었다. 전체 프로그램은 약 100분간 진행됐으며, 1부에서는 음악 감상 이후 시 낭송과 토크가 이어졌고, 2부에서 다시 음악 감상으로 마무리됐다. 관객들은 공연을 바라보는 대신, ‘읽기’와 ‘듣기’를 함께 하며 그 안에 머물며 각자의 속도로 감상했다. 음악은 배경이 아니라 중심이 됐고, 문학은 해설이 아니라 또 하나의 감각이 됐다.
세종문화회관 기획자 강봉진 과장은 “요즘 극장이 위기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OTT 같은 영상 매체부터 리조트나 놀이공원 등 다양한 체험 공간이 많아졌기 때문이죠. 이런 상황 속에서 극장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은 무엇일까 고민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가끔 무대에 올라 객석을 바라보면 그 공간이 압도적으로 느껴지곤 했습니다. 그 경험이 이번 공연의 출발점이 됐습니다”라며 공연 기획의 동기를 밝혔다.
이번 공연의 ‘관객을 무대 위로 올려보자’는 발상은 단순히 파격을 위한 선택이 아니다. 관람의 의미를 새롭게 묻는 시도에 가깝다. 관객이 무대의 주인공이 되어 예술적 감정을 함께 나누는 것, 그것이 지금 극장에 필요한 변화이다.
색다르게 책을 읽고, 음악을 듣다
올해 ‘리딩 & 리스닝 스테이지’는 지난해 진행한 ‘리스닝 스테이지’의 확장판이다. 전작이 빈백에 누워 음악을 감상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에는 북카페 무드로 무대를 구성해 ‘읽기’와 ‘듣기’를 함께 체험하도록 설계했다. 무대 위에 조성된 아늑한 공간은 관객의 시선과 체류 방식, 나아가 공간을 인지하는 방식까지 바꿔놓았다. 단순한 감상이 아닌, 머무르는 경험으로 확장된 셈이다.
이번 프로그램에서 사운드는 배경이 아니라 ‘공간 경험을 설계하는 도구’로 기능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스테레오가 아닌 이머시브 사운드 구성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공연의 전체 사운드를 담당한 2H Spatial Audio 윤현철 대표는 “사운드를 일반적인 스테레오로 진행할 수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이머시브를 특별히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공연 구조에 있다. 관객이 객석이 아닌 무대 위에 올라 자유롭게 공간을 점유하는 방식에서는, 소리가 특정 방향에서 전면으로 ‘투사’되는 기존의 확성 구조로는 한계가 있다. 이에 따라 무대 전체를 하나의 청취 영역으로 설정하고, 소리를 한 방향에서 전달하는 대신 공간 안에 ‘배치’하는 이머시브 접근을 택했다. 이는 관객이 어느 위치에 있더라도 음장 균형을 유지하고, 소리의 방향성과 밀도를 보다 자연스럽게 체감하도록 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실제로 관객들은 “같은 음악이 전혀 다르게 들린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위로 향하면서 공간을 올려다보게 된다”는 반응을 보이며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언급했다. 윤현철 대표는 “지난해 운영에서 느꼈던 아쉬움, 특히 앞쪽에서만 형성되는 이미지나 높이 표현의 부족을 보완하고자 했다”며 “올해는 객석 콘셉트 변화와 함께 공간 연출을 보다 적극적으로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관객은 책을 읽다가도 음악의 질감이 달라지는 순간 고개를 들게 된다. 읽는 공연이면서 동시에 ‘올려다보며 듣는’ 공연으로 확장된 것이다.
일반적인 공연이 객석을 기준으로 스피커 배치와 잔향, 반사 특성을 고려해 시스템을 설계한다면, 이번 프로젝트는 출발점부터 달랐다. 관객이 무대 위에 앉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세종문화회관 이효원 감독은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라기보다, 객석이 무대 위로 올라온 것에 가깝다”며 “관객이 무대에 앉는 순간 그 공간이 곧 객석이 되기 때문에, 무대와 객석을 구분하기보다 ‘무대에서 듣는 경험’을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밝혔다. 특히 이날 재생된 플레이리스트는 세종문화회관에서 향후 1년간 진행될 공연에 실제로 사용될 음원들을 미리 소개하는 성격이었다. 그는 “객석에서 확성된 사운드를 듣는 것과 무대에서 직접 확성되는 소리를 듣는 것은 체감이 다르다”며 “무대 사운드 특유의 밀도와 직진성이 관객에게 새로운 인상으로 다가갔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간 조건 역시 흥미로운 변수였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객석 기준으로 고른 커버리지를 구현하기 쉽지 않은 공간으로 알려져 있지만, 무대는 또 다른 특성을 지닌다. 윤현철 대표는 “무대 면적이 넓고 천고가 높으며 좌우와 후면 공간도 충분해 과도한 반사로 인한 왜곡이 상대적으로 적었다”며 “결과적으로 야외와 유사한 조건이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무대 위에 형성된 청취 영역은 비교적 안정적인 직진성과 명료도를 확보할 수 있었다.
메인 믹싱콘솔로 사용된 DiGiCo SD5
이머시브 프로세싱은 Galileo GALAXY 816 두 대로 이뤄졌다.
무대 위에 설계된 360도 이머시브 사운드
이번 공연에 사용된 시스템은 Meyer Sound 기반의 이머시브 구성이다. 전면과 측면, 후면을 Ultra-X 시리즈로 둘러 360도 수평 이미지를 형성하고, 상부에는 UPA-1P와 UPQ-D3를 Up/Down 계층으로 배치해 천장 방향의 이미지를 구체화했다. 저역은 전면 900-LFC와 후면 750-LFC를 병행 운용해 무대 위 관객이 특정 방향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균형을 확보했다. 프로세싱은 Galileo GALAXY 816 두 대로 구성했으며, 음악 재생 계통과 마이크 계통을 분리 운용했다.
윤현철 대표는 “대부분 당일 세팅 후 바로 공연에 들어가는 구조이기 때문에 믹스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결국 준비가 핵심”이라며, “이번에는 연습실에 미니멀 셋업을 구성해 사전 테스트와 믹스를 진행했고, 이 과정이 이머시브 모드 전환과 레벨 밸런스를 안정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대형 이머시브 시스템일수록 현장 대응 시간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사전 검증이 곧 안정성이라는 판단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메인 L/R 소스를 중심축에 두고, 관객 위치를 고려해 리버브 성격의 신호를 별도 레이어로 구성해 공간감을 형성했다. 또한 동일한 L/R 소스를 여러 스피커에 분산 배치해 공간 전반에 스테레오 이미지를 유지하도록 설계했다. 그는 “어느 위치에 앉더라도 레프트·라이트 이미지가 무너지지 않도록 객체를 배치했다”며 “이머시브의 핵심은 스위트스폿을 특정 지점이 아닌 공간 전체로 확장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저역 설계는 더욱 신중하게 접근했다. 이머시브 환경에서는 고역보다 저역의 편차가 체감에 더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윤현철 대표는 “저역은 전 영역에 걸쳐 편차 없이 존재해야 한다”고 전제하며, 이번 공연에서는 센터 서브 구성을 채택했다고 밝혔다. 플라잉 서브 조건은 아니었지만, 바닥 센터 배치를 통해 전 영역에 균일한 저역 에너지를 형성하는 데 주력했다. 그는 “저역이 움직이거나 불균형해지면 체감 변화가 급격하게 나타난다”며 “저역은 연출 요소라기보다 기반이다. 편차 없이 안정적으로 깔아두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공간을 재설계한 이머시브 시스템
인강오디오(주) 신동원 차장이 소개한 시스템 플랜을 보면, 이번 프로젝트는 프로세싱과 스피커 배치가 명확한 역할 분담을 이루고 있다. 프로세싱을 담당한 Galileo GALAXY 816은 대규모 채널 운용과 정밀한 매트릭스 제어가 가능해, 이머시브 환경에서 객체 배치와 레벨 매칭을 세밀하게 다루기에 적합하다. 특히 재생 계통과 마이크 계통을 분리 운용함으로써 공연 중 변수 대응과 시스템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했다.
이머시브 재생 계통은 Meyer Sound 라우드스피커를 중심으로 수평 둘레를 촘촘하게 형성했다. 프론트는 Ultra-X80(Frontal LL, RR)과 Ultra-X40(Frontal L/C/R)으로 구성했으며, 사이드와 리어는 Ultra-X20과 Ultra-X40을 혼합 배치했다. 리어 LL·RR에는 Ultra-X40을 투입해 후면 이미지의 존재감을 확보하고, R·L에는 Ultra-X20을 적용해 과도한 에너지 집중을 피했다. 사이드 역시 Up/Down 포인트를 나눠 Ultra-X20으로 구성해 공간 둘레의 밀도를 균일하게 유지했다.
Ultra-X 시리즈는 컴팩트한 인클로저 대비 높은 SPL과 안정적인 위상 응답 특성을 갖춰, 무대 위처럼 청취 거리가 유동적인 환경에서도 이미지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 유리하다. Ultra-X80은 비교적 긴 투사 거리와 높은 헤드룸을 바탕으로 프론트 축을 안정적으로 형성하고, Ultra-X40과 Ultra-X20은 근거리 필드에서 과도한 에너지 집중 없이 촘촘한 공간 밀도를 구현한다. 결과적으로 전면과 측·후면의 역할이 명확히 구분되면서도 하나의 연속된 음장으로 연결되는 구조다.
상부에 배치된 UPA-1P와 UPQ-D3 역시 공간의 ‘높이’를 설득력 있게 구현하기 위한 선택이다. UPQ-D3는 높은 출력과 정밀한 지향 제어 특성을 통해 상부 센터 이미지의 포커스를 명확히 만들고, UPA-1P는 보다 부드러운 확산 특성으로 상부 레이어를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상부를 단일 레이어가 아닌 Up/Down 이중 계층으로 구성함으로써, 위에서 형성되는 음상의 깊이와 명료도를 동시에 확보했다.
저역은 전면 900-LFC 두 대로 기반을 형성하고, 후면에는 750-LFC를 좌우 배치해 무대 위 청취 저역이 전면 한 방향으로만 집중되지 않도록 설계했다. 900-LFC는 깊고 단단한 저역 확장을 담당하고, 750-LFC는 비교적 빠른 응답 특성으로 저역 윤곽을 정리한다. 전후 분산 배치는 단순한 음압 보강이 아니라, 무대 위 전 영역에 균일한 저주파 필드를 형성하기 위한 전략이다.
임유영 시인과 함께한 시간
기술이 공간의 틀을 만들었다면, 콘텐츠는 그 공간을 ‘사용하는 방식’을 바꾸어 놓았다. 무대 위 객석에는 문학동네가 큐레이션한 시집 27권이 비치됐고, 임유영 시인이 직접 낭독과 대화를 진행했다. 임유영 시인은 “항상 관객으로만 오던 곳에 독자들을 만나러 무대 위에 올라온다고 생각하니 떨렸다”며 “그런데 독자들도 함께 무대 위에 있어 마음이 한결 편안했다”고 말했다. 슈베르트의 음악을 모티브로 한 공연과의 매칭에 대해서는 “운명적인 만남처럼 느껴졌다”고 덧붙였다. ‘관객이 무대 위에 있다’는 설정은 시인에게도, 독자에게도 새로운 감각을 만들어낸 셈이다.
임유영 시인의 첫 시집 『오믈렛』은 서울시발레단이 8월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선보일 컨템퍼러리 발레 ‘죽음과 소녀’와 함께 감상하기 좋은 작품으로 소개됐다. 현장에서 진행된 대담에서는 임유영 시의 결이 비교적 선명하게 짚였다. 명쾌한 결론을 제시하기보다, “선명함과 명쾌함을 기대하는 이에게는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는 방식으로 감각과 감정을 그대로 남겨두는 시. 해석을 강요하기보다 여백을 건네는 태도다.
토크는 ‘죽음과 소녀’의 출발점이 된 시와 슈베르트의 음악적 맥락으로 확장됐다. 임유영 시인은 자신의 시가 음악이 되기보다는 “음악의 소재가 되기를 기다리는 쪽에 가깝다”고 말했다. 동시에 팬데믹 시기 독립 레이블 프로젝트에 참여해 텍스트를 여러 레이어로 쌓는 방식의 협업을 진행했던 경험도 소개했다. 최근에는 영화 음악 작업 과정에서 작사를 맡은 적도 있었지만, “작사와 시 쓰기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라며 앞으로는 “파장이 맞는 협업”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관객과의 Q&A에서는 인상적인 장면도 연출됐다. 한 관객이 “시를 좋아해서라기보다 시에 끌려왔다”며 산문시를 쓰게 된 계기를 묻자, 임유영 시인은 “시를 비교적 늦게 읽기 시작했고, 서점에서 ‘마치 내가 쓴 것만 같은 책’을 발견하면서 산문시에 몰입하게 됐다”고 답했다. 이어 관객에게 “텍스트 없이 시만 듣는 경험은 어땠는지” 되묻기도 했다. 이에 한 관객은 “저자가 직접 낭독해 주어 시를 온전히 이해하는 느낌이 들었고, 낭독자의 감정을 함께 느낄 수 있어 좋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관객이 무대 위 주인공이 되다
‘리딩 & 리스닝 스테이지’는 관람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관객을 무대 위로 올린 순간, 공연장은 더 이상 일방향적 감상의 공간이 아니다. 시선과 몸의 위치, 소리의 방향이 동시에 재조정되며, 관객은 듣는 사람에서 공간 안을 탐색하는 존재로 바뀐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쉽게 객석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무대 위에서 객석을 바라보며 들었던 음악, 천장을 향해 고개를 들게 했던 상부 이미지, 전후좌우에서 형성된 음장의 밀도는 기존의 공연 기억과 다른 방식으로 각인된다. 그것은 단순한 ‘이머시브 체험’이 아니라, 공연장이 관객의 감각을 어떻게 설계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번 프로젝트는 관객의 위치가 바뀌는 순간, 공연의 의미도 함께 달라진다는 걸 보여줬다. 그리고 그 변화는 기획의 언어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동선과 시스템, 그리고 소리를 배치하는 방식이 함께 작동할 때 비로소 새로운 관람 구조가 현실이 된다. ‘리딩 & 리스닝 스테이지’가 남긴 것은 새로운 포맷이 아니라, 공연장이 아직도 재해석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가능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