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무제 기자
최근 트렌드를 따르는 새로운 레퍼런스 beyerdynamic DT900ProX

프로페셔널 음향 엔지니어에게 ‘레퍼런스’ 헤드폰이란 어떤 의미일까? 작업의 기준이 되는 것이기에 성능면에서 완벽해야 함은 물론이다. 고역, 중역, 저역에서 균형 잡힌 사운드를 내줘야 하며 해상도와 순간응답반응과 같은 동적 응답도 우수해야 한다. 무엇보다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특성은 바로 ‘믿을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기계적인 신뢰성을 말하기보다는 말하자면 ‘이 헤드폰에서 작업한 결과물’은 어디에서나 비슷하게 들려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지나치게 저음이 많은 헤드폰에서 작업을 한다면 그 결과물은 지나치게 저음이 적은 결과물이 될 것이다. 반대로 지나치게 저음이 적은 헤드폰에서 작업을 한다면 결과물에는 저음이 지나치게 많아질 것이다. 이 모든 문제점은 사실 음향 엔지니어가 해당 모니터링 장비에 익숙해져서 자신만의 레퍼런스가 잡혀있으면 상관이 없을 수 있지만 모든 일에는 어느 정도의 선이란게 있기 마련이다.
또 생각해볼 점은 시대의 변화다. 예컨대 90년대부터 심지어 2000년대 초중반까지 한국의 어지간한 녹음 스튜디오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Yamaha NS10m 스피커가 갖춰져 있었다. 하지만 최근의 녹음실의 메인스트림 현황을 살펴보면 이 제품을 사용하는 스튜디오는 이제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으며 사용 제품이나 브랜드의 경우에도 물론 그래도 시장 점유율이 높은 브랜드가 분명히 있지만 그래도 이전보다 훨씬 다변화된 모니터링 풍경을 볼 수 있다. 공통점은 예전보다 고음과 저음 표현력이 훨씬 나은 모니터 스피커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목소리의 모니터링이 가장 중요했다면 이제는 전대역에 걸친 광범위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증거다. 이는 소비자들이 음악을 즐기는 컨슈머 기기의 발전과도 연관이 있다. 예전이라면 그저 목소리가 잘 들리고 나머지 악기는 받쳐주는 것으로 만족했던 소비자들이 이제는 음악의 좀 더 넓은 대역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Beyerdynamic에게는 다소 미안한 이야기지만 지금까지 이들의 행보를 보면 다소 고집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물론 컨슈머 지향의 일부 상위 모델에서는 풍부한 저음을 느낄 수 있지만 메인스트림이라고 할 수 있는 DT770, 880, 990의 경우 매우 오랜 세월동안 절제된 저음과 풍부한 고역, 단단한 미들이라는 ‘고전적 레퍼런스’를 계속 유지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타사의 경우 시대의 변화에 따라 메인스트림 모델은 끊임없는 변화를 꾀하면서 최상위급 레퍼런스 모델의 사운드 컬러를 브랜드의 오리지널리티를 유지하는 용도로 쓰는데 이것과는 완전히 다른 반대의 행보인 것이다. 물론 DT770, 880, 990은 현재 기준으로도 매우 훌륭한 헤드폰이고, 필자 역시 매우 좋아하는 헤드폰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제품으로 예컨대 EDM 뮤직을 모니터링한다던가 혹은 다량의 서브우퍼가 난무하는 라이브 현장에서 메인스피커 밸런스와 비교해가면서 모니터링을 하는 용도라면 이제는 고개가 살짝 갸우뚱해지는 상황이 되었다. 말하자면 시대가 정말로 많이 변한 것이다.
Beyerdynamic은 이를 기존 제품의 리뉴얼보다는 새로운 라인업을 만드는 것으로 돌파하기로 한 것 같다. 새로운 DT700ProX, 그리고 DT900ProX는 중고음역대에서는 Beyerdynamic의 사운드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저음부를 한층 강화시킨 제품으로 시대에 걸맞은 변화를 꾀하고 있다. 물론 역시 Beyerdynamic의 DNA는 계속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저음이 부족하다. 하지만 필자는 이 제품에 대해 합격점을 주기로 했다.

중고음역대의 레퍼런스, Beyerdynamic
Beyerdynamic은 세계 최초로 무빙코일 다이나믹 방식의 헤드폰을 개발해서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이 분야에서 노하우가 가장 탁월한만큼 헤드폰 라인업 역시 방대하다. 처음에는 한 눈에 들어오지 않아 다소 당황스러울 수 있지만 가만히 정리해보면 손쉽게 구분이 가능하다. 저가형 모델이나 게이밍 대응 모델, 무선 모델이나 ENG용 헤드셋 등을 제외하고 설명할 것임을 밝혀둔다. Beyerdynamic에서 가장 대표적인 모델은 메인스트림이라고 할 수 있는 DT770, DT880, DT990이다. 순서대로 각각 클로즈드, 세미오픈, 오픈 타입이며 그레이드는 모두 같다. 이 제품은 특히 Pro 버전의 경우 일체의 군더더기를 제거하여 가격을 낮춰 그야말로 미친듯한 가성비를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사운드적 아이덴티티는 Beyerdynamic의 바로 그것을 가장 잘 유지하고 있어서 호불호는 갈리지만 전반적으로 가격에 비해 굉장히 충실한 사운드를 들려주는 제품임에는 틀림없다. 그 다음 설명할 라인은 특허받은 Tesla 기술을 적용한 고급 제품군이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T5나 T1같은 제품이 여기 속한다. 이 제품은 컨슈머 시장에 대응하는 하이파이 제품인만큼 상당히 풍성한 저음을 들려준다. 최근 추세에 따르면 오히려 이쪽이 중립성있는 소리를 들려준다고 느껴질 정도. 물론 메인스트림에도 Tesla 기술을 적용한 라인이 있다. DT1770, DT1880, DT1990이 바로 그것이다. 가격은 메인스트림 급보다는 두 배 가량, 혹은 그 이상으로 비싸지만 이전에 이미 리뷰를 해본 필자의 의견으로는 그만한 비용을 지불할 가치는 충분했다. 사운드적 완성도에 있어서 Tesla 기술은 분명히 의미있는 결과물을 내놓았고 필자의 취향에도 가장 부합하고 있다.
이번에 소개하는 DT900ProX는 이 점에서 라인업 분류가 다소 애매하다. Tesla 기술을 쓴 것은 아니라서 고가 제품군은 아니지만 실제로 제품의 외형이나 구성도 그렇고 소리를 들어봐도 확실히 기존의 DT990Pro에 비해 개선된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가격도 다소 높은데 또 그렇다고 해서 엄청난 가격차가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Beyerdynamic이 시도하는 새로운 아이덴티티 형성의 시도가 이 라인업에 담겨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실 헤드폰/이어폰의 EQ 커브 설정은 제품의 그레이드나 품질을 가늠하는 요소가 일부 있긴 하지만 일정 범위 안에만 들어온다면 ‘호불호’의 영역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그렇지만 대중들이 보편적으로 선호하는 그런 EQ커브라는 것은 분명히 존재한다. 해외의 모 유명 음향연구소의 연구 결과가 가장 유명한 예다. 다량의 표본 조사를 통해 정성적 평가를 데이터화시킨 이 연구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실험실에서의 측정으로 만들어낸 평탄한 소리보다 다소 저음이 많은 소리를 좀 더 선호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실제로 이후 많은 헤드폰/이어폰 제조사들은 저음을 보강한 제품들을 내놓기 시작했으며, 이 중에서는 일부 지나친 부스트로 인해 중고역이 마스킹되는 결과물을 내놓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제품 개발에 있어서 ‘타겟 커브’를 설정하고 그에 맞춰 개발을 진행한다는 프로세스를 정착시켜 시장의 수준 전체를 끌어올린 획기적인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제 아무리 아이덴티티가 강한 Beyerdynamic이라도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저음이 보강된 T 시리즈에서의 크나큰 호평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시장에서의 피드백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DT770, 880, 990의 오랜 팬들은 여전히 많으며 이미 아이코닉한 사운드로 자리를 잡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굳이 기존의 라인업을 변화시키는 모험을 할 필요는 없다. 새로운 기준에 맞는 새로운 제품을 만들면 되는 것이다. Beyerdynamic이 제시하는 새로운 기준, 바로 DT700ProX, T900ProX이다.

프로페셔널과 컨슈머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구성
DT900ProX의 구성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프로페셔널 음향 엔지니어와 컨슈머 애호가 모두 만족할만한 구성이라는 것이 눈에 띈다. 실제로 제품을 만져보면 전체가 금속으로 된 견고한 하우징, 빈틈없는 단단한 마감, 완벽한 착용감을 제공하는 이어패드, 고급스럽지만 튼튼한 헤드밴드 등 누구나 보편적으로 만족할만한 요소가 가득했다. 물론 이 제품의 가격은 기존의 DT990Pro보다는 한층 높다. 하지만 DT990Pro는 이미 오랜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로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린 헤드폰 중 하나이며 이로 인해 규모의 경제가 이미 달성되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DT900ProX만 하더라도 가격에 비해 꽤나 만족스러운 외형과 디자인, 소재를 제공한다는 점은 확실하다. 박스를 열고 본 제품 구성은 완전한 실속형이다. 본래 프로페셔널 용도로 개발되었음을 알리는 듯한 무심한 느낌의 휴대용 파우치와 케이블 구성을 보면 확실히 이 제품의 본래 아이덴티티가 드러난다. 물론 컨슈머 분야에서도 최근 들어서는 많은 제조사들이 지나치게 화려한 패키지를 지양하고 실속있는 구성을 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이는 친환경 이슈와도 닿아있는 것이기에 소비자들도 현명한 생각으로 이에 기꺼운 마음으로 동참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외형면에서 이 제품에서 크게 만족한 부분이 두 가지가 있는데 가장 먼저 언급할 것은 헤드밴드의 견고성이다. 처음에는 따로 플렉서블 구조가 보이지 않아서 다소 걱정했다. 그럼에도 리뷰는 해야겠기에 꽤 많은 힘을 주어 헤드밴드를 펴봤는데 기대했던 것보다도 헤드밴드가 무리 없이 넓게 벌어지고 꽤나 잘 버텨서 놀랐을 정도였다. 헤드밴드의 내구성은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역시 노하우가 풍부한 Beyerdynamic답다고 해야할까. 두 번째로 언급할 것은 바로 착용감이다. 프로페셔널 엔지니어 입장에서 헤드폰은 하루종일 함께 해야 할 도구이자 친구다. 불편하다면 오래 사용할 수가 없고 업무에의 집중도 어렵다. 물론 개방감이 큰 오픈타입 구조라서 편안한 착용감에 한 몫을 하지만 뿐만 아니라 벨벳 천 타입의 이어패드는 그야말로 천상의 착용감을 선사해준다. 하우징이 금속임에도 345g에 그치는 무게는 목에 부담이 되지 않아서 더욱 좋다. 헤드폰의 케이블은 교체할 수 있는 타입이며 놀랍게도 Mini XLR을 사용한다. 혹시 핀 배열에 있어서 독자 규격을 사용하나 싶어서 AKG 호환 케이블을 체결해보았는데 매우 멀쩡하게 잘 작동하였다. 커넥터 부분은 Mini XLR답게 튼튼했고 일체의 접촉 불량은 없었다. 제품의 스펙을 보면 임피던스는 48Ω인데 레퍼런스를 표방하는 오픈타입 헤드폰치고는 매우 낮은 수치이다. 필자는 오히려 이를 환영하는데, 헤드폰 앰프의 출력이 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뜻하기에 대부분의 장비에서 부담없이 구동이 가능하다. 또한 별도의 외장형 혹은 거치형 헤드폰 앰프가 없어도 되며 심지어 모바일 기기에서도 무리없이 구동이 가능할 정도다. 주파수반응은 5~40kHz로 넘치도록 충분하다. 사실 대부분의 헤드폰의 대응 주파수는 이미 충분하며, 가청주파수 내에서 얼마나 충실하게 잘 표현해주느냐가 훨씬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가청주파수를 채 표현하지 못하던 과거면 모를까, 현재에는 그렇게 관심있게 보지 않아도 되는 지표이다.

균형잡힌 커브, 광대한 스테이지 표현력
제 아무리 저음이 보강된 모델이라고는 하지만 사운드 성향은 Beyerdynamic의 아이덴티티가 고스란히 살아있다. 물론 그렇다고 DT990과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상당한 가격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DT990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중음역과 고음역대에서도 상당한 개선점이 보인다. 구체적으로는 초고역대가 훨씬 열린 모양새이면서도 중고역대의 거친 느낌, 특히 치찰음이 거슬리지 않게 들리는 점이 매우 마음에 든다. 말하자면 마치 실크와도 같은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고음역대 캐릭터랄까. 덕분에 스테이징이 매우 광활하다. 정확하게는 스테레오 이미지 형성이 매우 잘 이뤄진다고 할 수 있다. 눈을 감고 소리를 들으면 음원의 위치를 정확히 특정할 수 있어서 많은 상황의 경우, 이 헤드폰만으로도 믹싱이 가능할 정도다.
중역대는 전반적으로 Beyerdynamic답게 단단하면서도 밝은 모습이다. 표현력이 전반적으로 우수한데 중저역대가 적당히 억제되어 밸런스가 틀어진다거나 마스킹되는 것은 전혀 없고 상당히 많은 정보가 가감없이 전해진다는 느낌이다. 아마 필자의 느낌으로는 오히려 저역대보다는 이 중음역대에서 호불호가 다소 갈릴 것 같다. 따뜻하다기보다는 약간 차가운 쪽에 가까우며 이 부분은 동사의 고가모델인 T1이나 T5와는 확실한 그레이드의 차이가 느껴진다. 물론 T1과 T5와는 몇 배의 가격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정면 대결은 어려우며, 그마저도 필자가 앞서 언급한 ‘어느정도의 선’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작업자가 익숙해진다면 충분히 대응이 가능한 수준이다. 역시 DT990과 꽤 많은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 바로 저음역대이다. 그런데 저음역대가 커졌다는 느낌이 확 정면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좀 더 아랫도리를 깊숙하게 확장감있게 표현한다는 느낌이다. 말하자면 100~200Hz 대역의 큰 변화보다는 오히려 그 아래, 그러니까 서브우퍼나 혹은 Infra-Sub로 표현되는 대역이 롤-오프 없이 지속적으로 표현된다는 느낌이다. 이 느낌은 확실히 고급스러우면서도 중독성이 있다. 즉, 듣는 즐거움이 있다. 물론 저음이 많다는 타사의 헤드폰과 비교하면 확실히 억제되어 있긴 하지만 이만큼의 변화로도 적지 않게 큰 감동을 준다.
이런 특성들이 합쳐셔 DT900ProX는 상당히 맑고 깨끗하면서도 깊은 느낌을 동시에 전달한다. 탁 트인 스테레오감이 기분을 시원하게 하기 때문에 프로페셔널 모니터링을 넘어 하이파이 감상용으로도 듣는 즐거움을 정말 제대로 전달한다. 여기에 앞서 언급한 편안한 착용감, 그리고 오픈타입 헤드폰만이 줄 수 있는 개방감까지 합쳐져 정말 새로운 감상의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정말 좋은 헤드폰은 스피커로 듣는 듯한 느낌을 준다지만 DT900ProX는 그보다도 다른, 뭔가 좋은 헤드폰만이 줄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을 제공해준다.
모니터링용으로도, 하이파이용으로도
이 제품을 모니터링용으로 사용하겠다면 높은 해상력과 스테이징, 중음역대에서의 뛰어난 표현력으로 인해 단연 추천할만하다. 하지만 만약 예컨대 EDM이나 RnB 장르에서 사용하겠다고 한다면 다소의 적응은 필요할 것이다. DT900ProX는 중대한 변화를 보여주는 이정표적인 제품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Beyerdynamic이다. 기존에 Beyerdynamic을 쓰던 유저라면 이 제품을 적극 추천한다. 한결 부드러워진 고음, 그리고 확장된 저음은 모든 면에서 업그레이드라고 느껴진다. 하이파이 유저나 프로페셔널 유저 모두 만족할만한 요소를 DT900ProX는 모두 갖추고 있다. 디자인적인 면이나 소재, 그리고 착탈식 케이블, 우수한 착용감이나 전반적으로 고급스러워진 톤 캐릭터까지 단점을 찾기 힘들다. 여전히 풍부한 베이스라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필자 의견에는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하며 대부분의 작업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글 이무제 기자
최근 트렌드를 따르는 새로운 레퍼런스 beyerdynamic DT900ProX
프로페셔널 음향 엔지니어에게 ‘레퍼런스’ 헤드폰이란 어떤 의미일까? 작업의 기준이 되는 것이기에 성능면에서 완벽해야 함은 물론이다. 고역, 중역, 저역에서 균형 잡힌 사운드를 내줘야 하며 해상도와 순간응답반응과 같은 동적 응답도 우수해야 한다. 무엇보다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특성은 바로 ‘믿을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기계적인 신뢰성을 말하기보다는 말하자면 ‘이 헤드폰에서 작업한 결과물’은 어디에서나 비슷하게 들려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지나치게 저음이 많은 헤드폰에서 작업을 한다면 그 결과물은 지나치게 저음이 적은 결과물이 될 것이다. 반대로 지나치게 저음이 적은 헤드폰에서 작업을 한다면 결과물에는 저음이 지나치게 많아질 것이다. 이 모든 문제점은 사실 음향 엔지니어가 해당 모니터링 장비에 익숙해져서 자신만의 레퍼런스가 잡혀있으면 상관이 없을 수 있지만 모든 일에는 어느 정도의 선이란게 있기 마련이다.
또 생각해볼 점은 시대의 변화다. 예컨대 90년대부터 심지어 2000년대 초중반까지 한국의 어지간한 녹음 스튜디오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Yamaha NS10m 스피커가 갖춰져 있었다. 하지만 최근의 녹음실의 메인스트림 현황을 살펴보면 이 제품을 사용하는 스튜디오는 이제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으며 사용 제품이나 브랜드의 경우에도 물론 그래도 시장 점유율이 높은 브랜드가 분명히 있지만 그래도 이전보다 훨씬 다변화된 모니터링 풍경을 볼 수 있다. 공통점은 예전보다 고음과 저음 표현력이 훨씬 나은 모니터 스피커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목소리의 모니터링이 가장 중요했다면 이제는 전대역에 걸친 광범위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증거다. 이는 소비자들이 음악을 즐기는 컨슈머 기기의 발전과도 연관이 있다. 예전이라면 그저 목소리가 잘 들리고 나머지 악기는 받쳐주는 것으로 만족했던 소비자들이 이제는 음악의 좀 더 넓은 대역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Beyerdynamic에게는 다소 미안한 이야기지만 지금까지 이들의 행보를 보면 다소 고집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물론 컨슈머 지향의 일부 상위 모델에서는 풍부한 저음을 느낄 수 있지만 메인스트림이라고 할 수 있는 DT770, 880, 990의 경우 매우 오랜 세월동안 절제된 저음과 풍부한 고역, 단단한 미들이라는 ‘고전적 레퍼런스’를 계속 유지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타사의 경우 시대의 변화에 따라 메인스트림 모델은 끊임없는 변화를 꾀하면서 최상위급 레퍼런스 모델의 사운드 컬러를 브랜드의 오리지널리티를 유지하는 용도로 쓰는데 이것과는 완전히 다른 반대의 행보인 것이다. 물론 DT770, 880, 990은 현재 기준으로도 매우 훌륭한 헤드폰이고, 필자 역시 매우 좋아하는 헤드폰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제품으로 예컨대 EDM 뮤직을 모니터링한다던가 혹은 다량의 서브우퍼가 난무하는 라이브 현장에서 메인스피커 밸런스와 비교해가면서 모니터링을 하는 용도라면 이제는 고개가 살짝 갸우뚱해지는 상황이 되었다. 말하자면 시대가 정말로 많이 변한 것이다.
Beyerdynamic은 이를 기존 제품의 리뉴얼보다는 새로운 라인업을 만드는 것으로 돌파하기로 한 것 같다. 새로운 DT700ProX, 그리고 DT900ProX는 중고음역대에서는 Beyerdynamic의 사운드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저음부를 한층 강화시킨 제품으로 시대에 걸맞은 변화를 꾀하고 있다. 물론 역시 Beyerdynamic의 DNA는 계속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저음이 부족하다. 하지만 필자는 이 제품에 대해 합격점을 주기로 했다.
중고음역대의 레퍼런스, Beyerdynamic
Beyerdynamic은 세계 최초로 무빙코일 다이나믹 방식의 헤드폰을 개발해서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이 분야에서 노하우가 가장 탁월한만큼 헤드폰 라인업 역시 방대하다. 처음에는 한 눈에 들어오지 않아 다소 당황스러울 수 있지만 가만히 정리해보면 손쉽게 구분이 가능하다. 저가형 모델이나 게이밍 대응 모델, 무선 모델이나 ENG용 헤드셋 등을 제외하고 설명할 것임을 밝혀둔다. Beyerdynamic에서 가장 대표적인 모델은 메인스트림이라고 할 수 있는 DT770, DT880, DT990이다. 순서대로 각각 클로즈드, 세미오픈, 오픈 타입이며 그레이드는 모두 같다. 이 제품은 특히 Pro 버전의 경우 일체의 군더더기를 제거하여 가격을 낮춰 그야말로 미친듯한 가성비를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사운드적 아이덴티티는 Beyerdynamic의 바로 그것을 가장 잘 유지하고 있어서 호불호는 갈리지만 전반적으로 가격에 비해 굉장히 충실한 사운드를 들려주는 제품임에는 틀림없다. 그 다음 설명할 라인은 특허받은 Tesla 기술을 적용한 고급 제품군이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T5나 T1같은 제품이 여기 속한다. 이 제품은 컨슈머 시장에 대응하는 하이파이 제품인만큼 상당히 풍성한 저음을 들려준다. 최근 추세에 따르면 오히려 이쪽이 중립성있는 소리를 들려준다고 느껴질 정도. 물론 메인스트림에도 Tesla 기술을 적용한 라인이 있다. DT1770, DT1880, DT1990이 바로 그것이다. 가격은 메인스트림 급보다는 두 배 가량, 혹은 그 이상으로 비싸지만 이전에 이미 리뷰를 해본 필자의 의견으로는 그만한 비용을 지불할 가치는 충분했다. 사운드적 완성도에 있어서 Tesla 기술은 분명히 의미있는 결과물을 내놓았고 필자의 취향에도 가장 부합하고 있다.
이번에 소개하는 DT900ProX는 이 점에서 라인업 분류가 다소 애매하다. Tesla 기술을 쓴 것은 아니라서 고가 제품군은 아니지만 실제로 제품의 외형이나 구성도 그렇고 소리를 들어봐도 확실히 기존의 DT990Pro에 비해 개선된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가격도 다소 높은데 또 그렇다고 해서 엄청난 가격차가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Beyerdynamic이 시도하는 새로운 아이덴티티 형성의 시도가 이 라인업에 담겨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실 헤드폰/이어폰의 EQ 커브 설정은 제품의 그레이드나 품질을 가늠하는 요소가 일부 있긴 하지만 일정 범위 안에만 들어온다면 ‘호불호’의 영역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그렇지만 대중들이 보편적으로 선호하는 그런 EQ커브라는 것은 분명히 존재한다. 해외의 모 유명 음향연구소의 연구 결과가 가장 유명한 예다. 다량의 표본 조사를 통해 정성적 평가를 데이터화시킨 이 연구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실험실에서의 측정으로 만들어낸 평탄한 소리보다 다소 저음이 많은 소리를 좀 더 선호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실제로 이후 많은 헤드폰/이어폰 제조사들은 저음을 보강한 제품들을 내놓기 시작했으며, 이 중에서는 일부 지나친 부스트로 인해 중고역이 마스킹되는 결과물을 내놓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제품 개발에 있어서 ‘타겟 커브’를 설정하고 그에 맞춰 개발을 진행한다는 프로세스를 정착시켜 시장의 수준 전체를 끌어올린 획기적인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제 아무리 아이덴티티가 강한 Beyerdynamic이라도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저음이 보강된 T 시리즈에서의 크나큰 호평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시장에서의 피드백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DT770, 880, 990의 오랜 팬들은 여전히 많으며 이미 아이코닉한 사운드로 자리를 잡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굳이 기존의 라인업을 변화시키는 모험을 할 필요는 없다. 새로운 기준에 맞는 새로운 제품을 만들면 되는 것이다. Beyerdynamic이 제시하는 새로운 기준, 바로 DT700ProX, T900ProX이다.
프로페셔널과 컨슈머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구성
DT900ProX의 구성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프로페셔널 음향 엔지니어와 컨슈머 애호가 모두 만족할만한 구성이라는 것이 눈에 띈다. 실제로 제품을 만져보면 전체가 금속으로 된 견고한 하우징, 빈틈없는 단단한 마감, 완벽한 착용감을 제공하는 이어패드, 고급스럽지만 튼튼한 헤드밴드 등 누구나 보편적으로 만족할만한 요소가 가득했다. 물론 이 제품의 가격은 기존의 DT990Pro보다는 한층 높다. 하지만 DT990Pro는 이미 오랜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로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린 헤드폰 중 하나이며 이로 인해 규모의 경제가 이미 달성되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DT900ProX만 하더라도 가격에 비해 꽤나 만족스러운 외형과 디자인, 소재를 제공한다는 점은 확실하다. 박스를 열고 본 제품 구성은 완전한 실속형이다. 본래 프로페셔널 용도로 개발되었음을 알리는 듯한 무심한 느낌의 휴대용 파우치와 케이블 구성을 보면 확실히 이 제품의 본래 아이덴티티가 드러난다. 물론 컨슈머 분야에서도 최근 들어서는 많은 제조사들이 지나치게 화려한 패키지를 지양하고 실속있는 구성을 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이는 친환경 이슈와도 닿아있는 것이기에 소비자들도 현명한 생각으로 이에 기꺼운 마음으로 동참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외형면에서 이 제품에서 크게 만족한 부분이 두 가지가 있는데 가장 먼저 언급할 것은 헤드밴드의 견고성이다. 처음에는 따로 플렉서블 구조가 보이지 않아서 다소 걱정했다. 그럼에도 리뷰는 해야겠기에 꽤 많은 힘을 주어 헤드밴드를 펴봤는데 기대했던 것보다도 헤드밴드가 무리 없이 넓게 벌어지고 꽤나 잘 버텨서 놀랐을 정도였다. 헤드밴드의 내구성은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역시 노하우가 풍부한 Beyerdynamic답다고 해야할까. 두 번째로 언급할 것은 바로 착용감이다. 프로페셔널 엔지니어 입장에서 헤드폰은 하루종일 함께 해야 할 도구이자 친구다. 불편하다면 오래 사용할 수가 없고 업무에의 집중도 어렵다. 물론 개방감이 큰 오픈타입 구조라서 편안한 착용감에 한 몫을 하지만 뿐만 아니라 벨벳 천 타입의 이어패드는 그야말로 천상의 착용감을 선사해준다. 하우징이 금속임에도 345g에 그치는 무게는 목에 부담이 되지 않아서 더욱 좋다. 헤드폰의 케이블은 교체할 수 있는 타입이며 놀랍게도 Mini XLR을 사용한다. 혹시 핀 배열에 있어서 독자 규격을 사용하나 싶어서 AKG 호환 케이블을 체결해보았는데 매우 멀쩡하게 잘 작동하였다. 커넥터 부분은 Mini XLR답게 튼튼했고 일체의 접촉 불량은 없었다. 제품의 스펙을 보면 임피던스는 48Ω인데 레퍼런스를 표방하는 오픈타입 헤드폰치고는 매우 낮은 수치이다. 필자는 오히려 이를 환영하는데, 헤드폰 앰프의 출력이 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뜻하기에 대부분의 장비에서 부담없이 구동이 가능하다. 또한 별도의 외장형 혹은 거치형 헤드폰 앰프가 없어도 되며 심지어 모바일 기기에서도 무리없이 구동이 가능할 정도다. 주파수반응은 5~40kHz로 넘치도록 충분하다. 사실 대부분의 헤드폰의 대응 주파수는 이미 충분하며, 가청주파수 내에서 얼마나 충실하게 잘 표현해주느냐가 훨씬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가청주파수를 채 표현하지 못하던 과거면 모를까, 현재에는 그렇게 관심있게 보지 않아도 되는 지표이다.
균형잡힌 커브, 광대한 스테이지 표현력
제 아무리 저음이 보강된 모델이라고는 하지만 사운드 성향은 Beyerdynamic의 아이덴티티가 고스란히 살아있다. 물론 그렇다고 DT990과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상당한 가격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DT990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중음역과 고음역대에서도 상당한 개선점이 보인다. 구체적으로는 초고역대가 훨씬 열린 모양새이면서도 중고역대의 거친 느낌, 특히 치찰음이 거슬리지 않게 들리는 점이 매우 마음에 든다. 말하자면 마치 실크와도 같은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고음역대 캐릭터랄까. 덕분에 스테이징이 매우 광활하다. 정확하게는 스테레오 이미지 형성이 매우 잘 이뤄진다고 할 수 있다. 눈을 감고 소리를 들으면 음원의 위치를 정확히 특정할 수 있어서 많은 상황의 경우, 이 헤드폰만으로도 믹싱이 가능할 정도다.
중역대는 전반적으로 Beyerdynamic답게 단단하면서도 밝은 모습이다. 표현력이 전반적으로 우수한데 중저역대가 적당히 억제되어 밸런스가 틀어진다거나 마스킹되는 것은 전혀 없고 상당히 많은 정보가 가감없이 전해진다는 느낌이다. 아마 필자의 느낌으로는 오히려 저역대보다는 이 중음역대에서 호불호가 다소 갈릴 것 같다. 따뜻하다기보다는 약간 차가운 쪽에 가까우며 이 부분은 동사의 고가모델인 T1이나 T5와는 확실한 그레이드의 차이가 느껴진다. 물론 T1과 T5와는 몇 배의 가격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정면 대결은 어려우며, 그마저도 필자가 앞서 언급한 ‘어느정도의 선’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작업자가 익숙해진다면 충분히 대응이 가능한 수준이다. 역시 DT990과 꽤 많은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 바로 저음역대이다. 그런데 저음역대가 커졌다는 느낌이 확 정면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좀 더 아랫도리를 깊숙하게 확장감있게 표현한다는 느낌이다. 말하자면 100~200Hz 대역의 큰 변화보다는 오히려 그 아래, 그러니까 서브우퍼나 혹은 Infra-Sub로 표현되는 대역이 롤-오프 없이 지속적으로 표현된다는 느낌이다. 이 느낌은 확실히 고급스러우면서도 중독성이 있다. 즉, 듣는 즐거움이 있다. 물론 저음이 많다는 타사의 헤드폰과 비교하면 확실히 억제되어 있긴 하지만 이만큼의 변화로도 적지 않게 큰 감동을 준다.
이런 특성들이 합쳐셔 DT900ProX는 상당히 맑고 깨끗하면서도 깊은 느낌을 동시에 전달한다. 탁 트인 스테레오감이 기분을 시원하게 하기 때문에 프로페셔널 모니터링을 넘어 하이파이 감상용으로도 듣는 즐거움을 정말 제대로 전달한다. 여기에 앞서 언급한 편안한 착용감, 그리고 오픈타입 헤드폰만이 줄 수 있는 개방감까지 합쳐져 정말 새로운 감상의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정말 좋은 헤드폰은 스피커로 듣는 듯한 느낌을 준다지만 DT900ProX는 그보다도 다른, 뭔가 좋은 헤드폰만이 줄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을 제공해준다.
모니터링용으로도, 하이파이용으로도
이 제품을 모니터링용으로 사용하겠다면 높은 해상력과 스테이징, 중음역대에서의 뛰어난 표현력으로 인해 단연 추천할만하다. 하지만 만약 예컨대 EDM이나 RnB 장르에서 사용하겠다고 한다면 다소의 적응은 필요할 것이다. DT900ProX는 중대한 변화를 보여주는 이정표적인 제품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Beyerdynamic이다. 기존에 Beyerdynamic을 쓰던 유저라면 이 제품을 적극 추천한다. 한결 부드러워진 고음, 그리고 확장된 저음은 모든 면에서 업그레이드라고 느껴진다. 하이파이 유저나 프로페셔널 유저 모두 만족할만한 요소를 DT900ProX는 모두 갖추고 있다. 디자인적인 면이나 소재, 그리고 착탈식 케이블, 우수한 착용감이나 전반적으로 고급스러워진 톤 캐릭터까지 단점을 찾기 힘들다. 여전히 풍부한 베이스라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필자 의견에는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하며 대부분의 작업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